나는 아직 김치를 사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행 다녀오고 몸살이 난 다음 열무김치로 입맛을 찾았습니다

by이숙자

일주일 동안 서울에서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온 후 군산 집으로 돌아온 날, 긴장이 풀린 탓인지 몸에 기운이 빠져나간 듯 피곤하고 몸살처럼 온몸이 쑤신다. 여행이란 즐거운 기운을 받기도 하지만 때론 나의 정체성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되새김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음 날도 겨우 식사를 챙기고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지난해 위를 삼분의 이를 잘라낸 뒤, 가끔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럽고 몸이 신호를 보내면 잠시 누워서 쉬면 회복되는 걸 알았다. 우리 몸이란 참으로 신비해서 어딘가 불편하면 꼭 신호를 보내온다. 그걸 인지하고 처방을 해 주는 것이 내 몸을 지키는 일이란 걸 뒤늦게야 알았다.


몸이 안 좋으니 아무 의욕도 없고 무력하다. 마음 안에 요란한 잡념으로 혼란스럽다. 나는 왜 매일 그토록 정신없이 쫓기듯 바쁘게 살고 있을까? 아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으련만 나는 나를 구속하면서 숙제를 하듯 의무감 같은 것이 마음 안에 잠재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또 묻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리 편한데,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삶의 길이가 얼마쯤 남아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편하다고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흔들리면서 방황하고 있다. 지금 까지 한 번도 나의 선택에 흔들린 적이 없었는데, 묘한 일이다.


글 쓰는 일도, 어반 스케치 그림 그리는 일도, 펜화를 하는 일도, 잠시 멈추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 이처럼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걸까?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뒤엉킨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하다. 나이 듦이란 변화하는 몸의 상태, 달라지는 마음의 자세까지도 생의 과정이란 걸 느끼며 매일매일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며칠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먹을 것은 먹어야 하기에 마트에 다녀왔다. 마트에서 본 싱싱한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보고, 금세 열무김치 비빔밥을 먹고 싶은 생각에 열무 두 단 과 얼갈이 한 단을 사 가지고 와 바로 다듬고 소금에 절여 저녁을 먹고 밤에 김치를 담갔다.


열무김치 입맛을 찾기 위해 담근 열무김치


여행지에서 못 먹었던 열무김치가 먹기도 전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기운을 돋게 한다.


속성으로 담근 열무김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김치를 사 먹고살지만 나는 아직 김치를 사 먹는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내 손으로 김치를 담가 먹어야 마음이 편하고 아직도 나는 누구에게 내 삶을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 다음으로 살고 싶다. 여름 반찬은 뭐니 뭐니 해도 열무김치가 으뜸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지난해 수술 후 열무김치와 풋고추 숭숭 썰어 자박하게 끓인 된장으로 입맛을 찾고 수술 후유증을 견뎌냈다.


몸은 피곤이 다 가시지 않았지만 김치를 담글 땐 어디에서 기운이 솟아나는지, 그 밤에 열무김치를 담그고 나서야 마음이 흡족했다. "이제 열무김치에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자"라고 하면서 나를 다독인다.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나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


자박자박 끓인 된장찌개에 들기름 듬뿍 넣은 열무 비빔밥을 먹고서야 입맛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온 듯 침대에서 일어나 멈추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무력하고 아무 의욕이 없던 내 몸을 일주일을 멈칫 거리며 쉬고 난 다음에야 예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몸과 마음의 변화는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몸이 회복되니 다시 삶이 생기롭다. 내가 이처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잠시 가출한 마음의 방향을 되찾았다. 사람 마음은 언제라도 변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달은 차면 기울고 세상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 혹여 힘든 일이 생겼다고 크게 절망하지 말자. 삶의 시간은 다 지나가는 것이다. 인생사 다 새옹지마다. 이 말은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 내게 해 주는 위로의 말이다. 다시 기운을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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