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나와 세상 우울한 글을 쓰는 나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새하얀 바탕에 검은 선으로 그리고 마는 나는 또 어떤 사람일까.
두 권의 바카라을 독립출판물로 만들었다. 한 권은 굴을 파고 또 파서 내밀한 우울을 끄집어내는 내용이라 읽은 독자마다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고, 다른 한 권은 ‘따뜻하고 재밌게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두 권의 바카라에 실린 각각의 글들은 다른 시기에 쓰인 것이 아니다. 지난 3년여간 메모장에 썼던 글들을 두 가지 주제로 추린 것뿐이다. (하나는 ‘우울과 생존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었고 다른 하나는 ‘마당 일기’라는 제목이 붙었다.)
나는 때로 이쪽 끝에 섰다가도 다음날 다른 쪽 끝까지 가곤 한다. 어제 좋아했던 일을 오늘 싫어하기도 하고, 어제까지 아무 관심 없던 일에 대해 하루 만에 ‘덕질’을 시작하기도.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 매일 다른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인공처럼 영 다른 ’나‘들을 매일이고 마주한다. 수많은 ’나‘들이 서로 자기주장을 할 때면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워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때 만나는 ’나‘도 새롭고 나쁘지 않다. 의외로 대범하고 간이 큰 녀석인데 주로 여행을 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나의 바카라을 만들 때에도 이 녀석이 한몫을 해 주었다. 겨울에 한 권, 여름에 한 권 내리 두 권의 바카라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예전에는 1번 수진이와 2번 수진이, 그리고 그 밖의 수진이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1번 수진이가 무엇을 결정하려고 하면 2번 수진이는 항상 발목을 잡고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이었다. 그러면 3번 수진이가 2번 수진이를 말리고, 그다음 4번 수진이가... 이런 식으로 확장되는 거다.
결정이 늦어지는 게 결국 2번 수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부터 1번이 주장하는 것 위주로 들어주곤 했는데, 알고 보니 1번 수진이도 하나가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많고 다른 ’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찬찬히 들어주고, 돌아가면서 한 번씩 역할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누구 하나 배제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조금 느리더라도, 혹은 어떤 녀석이 조급하게 달려 나와도 살살 안아주면서 그렇게 가보려고 한다. 그 모든 수진이가 결국 나란 것을 인정하며 소중히 여겨보려 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른 사람일지, 같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다 괜찮다. 소중히 대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그런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소중하다는 마음. 그들의 삶이, 그들의 서투름이, 그들 안에서 투쟁하고 살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그들이. 예쁘고 소중해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