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란 무엇인가? 무지의 자각이다. 이는 타자로부터 온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언제나 타자라는 거울을 통해 알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지혜에 이를 수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있던가.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지혜는커녕 더 크고 더 깊은 무지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넘쳐 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세상에 수많은 타자들이 있지만, 거울로서 타자를 만나는 일은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지혜의 문제에서 정작 중요한 건, 거울과 같은 타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무지를 자각해 줄 타자를 만나기란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타자는 많지만, 거울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타자는 드물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이미 무지의 자각에 이르게 해줄 수많은 타자가 존재한다. 지혜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것은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를 ‘무지의 자각’이라 정의했다면, 나는 지혜를 ‘과잉된 자의식의 해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는 같은 말이다. 무지는 어디서 오는가?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온다. 바로 이런 마음이 과잉된 자의식 아닌가? 세상 모든 일을 부지불식간에 나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무지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모르는 타자와 세계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지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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