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비용

바카라임감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

bystephanette

내가 수년간 고민해 온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오늘 아는 분과 이런 대화를 했다.


정답은 없다.
각 개인마다의 방향성이 있을 뿐.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과
스스로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사는 것.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침묵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그러니까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장님 삼 년 그렇게 살았다.

삼 년이 뭔가. 수십 년이라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면 했다.


20대에는 무모했다.

나는 반골이다.

나와 상관없는 약자들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나는 참지 못하고 관리자에게 반항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해도 감수했다. 온라인 게임을 자진해서 그만두기도 했다. 나는 단체 행동에서 돌격대다.

아마도 나는 슬롯학을 전공했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것에 일체의 후회가 없다.

리스크를 회피하기보다는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하는 쪽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데 그런 행동 자체가 작용이라서

반작용은 발생한다.


등가교환의 법칙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일들이 생기냐고 한다면,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함께 다닌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내가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개인적인 예로 들면,

결혼을 하면

매우 행복한 순간들과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생긴다.

둘을 분리할 수 없다.

파도가 높으면 그 깊이도 깊어진다.

그러나, 둘 다 감당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과 관련해서는 그런 것들을 감당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할 일이 자주 생긴다.


갈등이 생기면,

이기적인 사람들은 피해를 입을 일이 적다.

리스크 관리를 하고 침묵하는 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집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냥 성향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본질에 가까운 질문이다.


어떤 선택이 좋은 것일까.


나는 월급충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믿는 좋은 일에 나를 헌신하면서 살고자 했었다.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월급충으로 살자.

이런 결론으로 가고 있다.


집단 안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안전해 보일 때가 많다.

문제를 봐도 못 본 척하고,

바카라임질 일을 만들지 않고,

누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몫만 지키면 갈등에 휘말릴 일이 적다.

반대로 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반드시 마찰을 만들게 된다.

기존의 편의, 이해관계, 암묵적 합의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늘 사람들이 신뢰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지내왔다.

그리고 늘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종의 동지라고 하자.

그 동지들이 다 회의감에 젖어있다.


글쎄. 나이가 들어서

볼 꼴 못 볼 꼴을 다 봐버려서일까.


그렇다고

각자도생이라 하기에는 너무 삭막하다.


아무리 제각기 다 혼자이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댈 사람 하나

마음 둘 곳 하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렇게 믿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힘든 시기에는 도와줄 사람보다

등에 칼 꽂을 사람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비용을 감당하는 이유는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비용을 무엇 때문에 감당하는가이다.


여전히 대의명분이나 공동의 가치는

희생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암흑에 뒤덮여도.


그런데 다들 이제는

월급충으로 살자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러는 척하고 있는 중이다.



사족

그냥 좀 외로운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미슬토 아래는 피해 다니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