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설명하는데, 그것을 살피기도 전에 말한 경험마저 평가절하 됐다.
트라우마 바카라을 읽고 있다.
그리 즐거운 독서는 아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서문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남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 여성적 시선에서 보는 것이 보다 더 잘 설명한다는 말이었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의 경험은 말을 꺼내는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화를 하는 것은
기본 전제가 있다.
상대가 나의 말을 경청할 상태인가.
설령 아무리 상대가 "힘든 일이 있으면 다 말해도 된다"라고 말했다고 해도,
상대 앞에서 입을 열 수 없다면 말은 시작되지 못한다.
상대의 "다 말해도 된다"는 허용은
실제로 말을 꺼낼 수 있다는 안정성과는 별개다.
트라우마의 경험은 쉽게 평가절하된다.
별것 아닌 것으로
쓸데없이 긴 이야기로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로.
그런 것들은 개인적인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경험이라는 설명을 다시 하게끔 한다.
그것은 슬픔이다.
분노다.
존엄에 대한 상처다.
자기 경험의 현실성을 남에게 허가받아야 하는 상황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그러니 말은 시작되기 어렵다.
"왜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느냐"에 시선이 머물기 전에
"그 말을 하기까지 무엇을 얼마나 오래 견뎌왔는가"를 먼저 보는 태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독서의 첫 시작부터 상당히 난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