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품인데 왜 성장하지 못하는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1)

by조병묵

초기 창업기업이 성장기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흔히 제품력, 자금력, 인력의 부족에서 찾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다른 장면도 보인다. 제품은 나쁘지 않은데 크지 못하는 사업, 대표는 누구보다 열심인데 늘 제자리인 회사, 고객 반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성장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브랜드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제품의 실체가 아니라 고객의 머릿속에 있다.


예를 들어 한 작은 식품 브랜드가 맛과 원재료에서는 자신 있었지만 2년째 매출이 제자리인 경우가 있다. 제품은 훌륭했으나, 고객에게는 그저 수많은 온라인 브랜드 중 하나였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제품이 좋다고 믿는다. 품질도 괜찮고, 기능도 경쟁사보다 밀리지 않으며, 가격도 아주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객의 인식 속에서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일할 때나 한 번 사볼 만한 것", "비슷한 것 많은 시장의 흔한 선택지", "굳이 기억할 필요 없는 평범한 브랜드"로 분류되어 있다면, 그 사업은 성장기로 넘어가기 어렵다. 재구매와 자발적인 추천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은 기업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기업은 기능, 품질, 제조공정, 원재료, 차별화 포인트를 길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고객은 그렇게까지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객은 먼저 인식하고, 그다음 분류하며, 마지막으로 판단한다. 즉 고객은 제품의 실체를 충분히 이해한 뒤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눈에 들어온 신호를 해석한 뒤 그것이 어떤 제품인지를 빠르게 결론 내린다. 상세페이지를 끝까지 읽고 판단하기보다, 첫 문장과 첫 사진, 첫 리뷰를 보고 "아, 이건 이런 제품이구나"라고 먼저 분류해 버리는 식이다.


그래서 시장에서의 승부는 단순히 "무엇을 만들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식되는가"다. 우리에게는 공들여 만든 좋은 제품이지만, 고객의 머릿속에서는 그저 그런 제품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전문성이 담긴 서비스이지만, 고객에게는 가격 할인 없이는 선택받기 어려운 대체 가능한 서비스일 수 있다. 성장의 정체는 여기서 시작된다.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고객의 인식 속에서 차별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두를 써도 어떤 카페는 "동네 카페"로, 어떤 카페는 "원두에 진심인 곳"으로 인식된다. 차이는 제품 자체보다 먼저 형성되는 인식에 있다.



어떻게 하면 인식의 늪을 지나 성장기에 진입할 수 있을까. 성장하는 브랜드는 대개 고객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준 브랜드가 아니라, 더 빨리 이해된 브랜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니라 선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신호는 짧고, 반복적이며, 강력해야 한다. 짧아야 고객이 기억할 수 있고, 반복되어야 인식이 굳어지며, 강력해야 비슷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신호는 단순한 광고 문구가 아니다. 때로는 가격 정바카라이 신호가 되기도 한다. 너무 저렴해서 효능을 의심받는 화장품보다, 압도적으로 비싸서 신뢰를 주는 프리미엄 영양제가 더 선명한 신호를 보낼 때가 있다. 창업자의 이력, 특정 고객군만을 위한 포지셔닝, 독특한 패키지,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전문성도 모두 신호가 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식품"보다 "야근하는 온라인 게임인을 위한 저녁 대용식"이 더 강한 신호다. 제품 설명보다 고객의 머릿속 분류 체계를 먼저 바꾸기 때문이다.


신호의 힘은 많은 것을 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많은 것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데 있다. 모든 것이 비슷해 보이는 시장에서 우리 브랜드 앞에 붙을 수식어를 선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식의 싸움이다. 인식의 싸움은 키워드를 선점해 '도드라진 하나'가 되느냐, 아니면 ‘그저 그런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느냐 둘 중 하나의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0.1% 고객의 극단적 니즈에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 "1%의 민감성 피부를 위한 무향 세제"처럼 이름표가 붙는 순간 기억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신호를 바꿨는데도 고객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문제는 인식이 아니라 정합성(Alignment) 일 수 있다. 우리가 설정한 타깃 고객이 실제 구매자와 일치하는가. 예를 들어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워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잡았지만, 실제로는 가볍고 수납이 좋아 '기저귀 가방'으로 찾는 30대 엄마들이 주 고객일 수 있다. 이 경우 문제는 마케팅 부족이 아니라 고객 정의 자체의 오류다.


가치가 창출되고 전달되는 전 과정, 즉 '고객-니즈-솔루션-전달 방식'이 서로 맞물려 있는지를 다시 봐야 한다. 많은 사업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고객의 문제와 우리의 해법이 정렬되어 있지 않아서 성장하지 못한다. 고객은 '편리함'을 원했는데 우리가 '기능의 다양성'만 강조하고 있다면, 제품은 좋아도 시장에서는 엇나간 제안이 된다.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할 것은 고객과의 소통 방식이다. 전통적으로 고객과의 소통은 광고라는 유료 미디어(Paid Media)에 의존해 왔다. 그래서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은 브랜드를 알리지 못하는 대표적 핑계로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영상 중심의 디지털 환경은 판도를 바꿨다. 짧은 영상 하나와 진정성 있는 사용 후기만으로도 충분히 인식의 출발점을 만들 수 있다. SNS와 같은 언드 미디어(Earned Media)와 자사몰이나 앱 같은 온드 미디어(Owned Media)를 통해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고 소통에 활용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격언 중 "인식이 곧 실체다(Perception is reality)"라는 말이 있다. 모방이 쉬워진 환경일수록 이 말은 더욱 강력한 힘을 얻는다. 성장하지 못하는 사업의 문제는 "우리 제품이 충분히 좋은가"에만 있지 않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고객은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인식은 우리가 의도한 방향과 일치하는가. “


성장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 오지 않는다. 고객의 머릿속에 우리 브랜드를 설명하는 수식어 하나가 붙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인식의 늪을 지나 성장기에 다가서게 된다. 결국 "가성비 브랜드", "전문가 브랜드", "선물하기 좋은 브랜드" 같은 선명한 이름표 하나를 획득하는 순간, 성장의 속도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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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관점의 질문


고객은 이 회사를 어떤 카테고리로 인식하는가? 가격 외에 고객이 선택할 이유가 분명한가? 이 회사의 대표 신호는 무엇인가? 고객-니즈-솔루션-전달 구조는 정렬되어 있는가? 자본 투입 없이도 인식 전환이 가능한 구조인가?


경영자 관점의 질문


우리는 고객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우리 브랜드 앞에 고객은 어떤 수식어를 붙이는가? 고객이 우리를 선택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 메시지 중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선명하게 밀어야 할 신호는 무엇인가? 성장 정체의 원인은 인식, 정합성, 실행 중 어디에 있는가?


팀장 관점의 질문


팀원들은 동일한 고객을 상상하며 일하고 있는가? 고객 접점마다 같은 메시지가 전달되는가? 고객은 첫 접점에서 우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고객이 자주 보이는 망설임은 무엇인가? 이번 달에 인식을 바꾸기 위해 시도한 실험은 무엇인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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