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4. 감상은 관객의 것이다
봄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갤러리들이 전시를 연다. 4월에는 대형 전시나 화랑미술제가, 5월에는 지역 아트페어나 개관전이 이어져 ‘박물관·미술관의 달’이라 불린다. 따뜻한 날씨에도 코트를 걸친 사람들이 지식인의 모습을 하고 하나둘씩 모인다. 갤러리 안에서는 작가와 지인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앞다투어 사인을 주고받는다. 대형 전시는 스케치 습작이나 비공개 작품을 “첫 공개”라 홍보하며 관람객을 모은다.
사람들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천천히 본다. 작품 제목과 제작 연도를 확인하고, 어떤 물감이 쓰였는지를 살핀다.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발걸음은 수평으로, 고개는 수직으로 움직인다. 마치 앵무새 무리처럼 반복된다. 전시가 끝나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식사하러 떠난다. 이럴 바엔 차라리 집에서 인터넷으로 보는 편이 더 오래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몇 년도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를 줄줄 외지만, 그림이 던지는 인상이나 감정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많은 작품을 보아도 추억이 되지 않는다.
칸트는 자연미를 예술미보다 우위에 두었고, 예술을 천재적 모방에 의한 순수 형식의 추구로 보았으나 개념적 요소 때문에 불순하다고 말했다. 연도나 재료만 나열하며 감상하는 관람자는 미적 판단의 핵심인 ‘무관심성’을 잃는다. 진정한 미적 체험은 작품의 ‘합목적성’—즉 목적 없는 목적성—을 통해 감성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칸트 미학에서 무관심성은 미적 판단의 본질로, 작가의 의도나 외부 해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관조의 상태를 뜻한다. 욕망, 지적 판단, 도덕적 고려를 배제한 채 형식만을 바라보는 그 상태에서 상상력은 자유로워진다. 이런 판단은 개념에 묶이지 않으며, 상상력과 오성이 ‘자유로운 유희’를 이루어 주관적 만족 속에서도 보편성을 주장하게 된다.
작가의 이야기나 역사적 설명은 이런 순수성을 방해하고, 상상력의 자율적 운동을 막는다. 결국 미적 판단의 본질은 작품을 둘러싼 정보가 아니라 그 형식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울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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