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by최명숙


나는 라면을 일 년에 많이 먹어야 다섯 번 정도다. 거의 먹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맛없는 라면으로 만들어 먹는다. 끓일 때 커피포트에 물을 같이 올린다. 냄비에서 라면이 웬만큼 익으면 물을 완전히 따라버린 후, 면발 깨끗이 헹구어 냄비에 다시 넣는다. 그런 다음 커피포트에 끓고 있는 물 붓고 수프와 건더기를 넣는다. 그러면 기름기 하나 뜨지 않는 아주 담백한 라면이 된다. 콩나물 양파 미역 등을 넣어 함께 끓이기도 한다.


아들과 딸은 그게 무슨 라면이냐고 한다. 라면 특유의 끌리는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지들은 맛이지만 나는 건강이다. 나만의 라면 끓이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고수하고 있다. 그렇게 끓이면 그릇 씻을 적에 세제 쓰지 않아도 뽀득뽀득 소리 날 정도로 기름기가 없다. 맛은 없을지라도 깨끗한 음식이 내 몸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 흐뭇하다. 이런 방법 고안해 낸 게 스스로 대견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나라고 왜, 라면 본래의 맛을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아들과 딸은 국물을 안 먹으면 상관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면발에 붙은 기름이 어디 가느냐고, 면발을 튀겨 만든 건데 끓이면 기름기가 모두 우러나와 둥둥 떠 있는 거 안 보이느냐며, 내 방식이 좋은 거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두 아이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맛없이 먹는 것보다 맛있게 먹고 운동하면 된다는 주의다. 그걸 누가 모르나, 쉽지 않으니까 그렇지, 나도 지지 않고 구시렁댄다.


일 년에 다섯 번 정도밖에 먹지 않는 라면인데도 그렇게 끓여 먹는 데 이유가 있다. 기름기 둥둥 뜨는 걸 견딜 수 없고, 그걸 먹고 난 후 내 혈관 속에 기름이 떠다닐 것 같아 몸이 근질거린다. 자주 먹지 않는 이유는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면이어서 혈당이 치솟기 때문이다. 이놈의 혈당 스파크! 그래서 정 먹고 싶을 때 그런 식으로 끊여 먹는다. 실제로 몸에 좋은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 맛있는 국물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한 숟가락도.


열두 살쯤에 처음 먹어본 라면 국물은 신세계였다. 그 국물 맛이 아까워 라면 두 개면 국수를 그보다 서너 배 분량 같이 넣고 끓여 온 식구가 먹었다.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나는 시골 그것도 바다라곤 볼 수 없는 충청북도 산골 태생이어서 멸치나 다시마 같은 해산물을 거의 먹지 못하고 자랐다. 국에 멸치 서너 마리 넣어 끓여 먹는 것도 손님 왔을 때였다.


라면 한 개를 오롯이 끓여 먹은 적이 딱 한 번 있다. 감기에 된통 걸려 목이 붓고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대던 겨울이었다. 며칠 동안 밥을 거의 먹지 못하자 엄마가 물으셨다. 뭘 먹고 싶으냐고. 힘없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라면. 엄마는 삼거리까지 걸어가서 라면을 사 오셨다, 딱 한 개만. 동생들은 라면이 끓고 있는 화롯가에 앉아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자기들 차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기에 더욱 먹고 싶었으리라.


엄마가 빗자루를 들어 쫓자 방문 열고 봉당으로 튀었다. 엄마는 웃었지만 나는 미안했다. 그래도 오롯이 그거 하나만 끓여 먹는 맛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드디어 엄마는 라면이 보글보글 끓는 노란 냄비를 개다리소반에 올려놓으며 먹으라고 했다. 국물 먼저 먹으렴. 엄마의 말씀대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짭짤하면서 고소하고 따뜻한 국물이 인후를 적시며 식도로 내려갔다. 봉당에 어른대는 동생들의 그림자가 여닫이문에 비쳤다.


아무리 맛있어도 더 이상 혼자 먹을 수 없었다. 동생들을 부르자 빛의 속도로 뛰어 들어와 먹기 시작했다. 수저는 언제 준비했던 걸까. 내가 부를 걸 알고 있었나 보다. 노란 냄비 바닥엔 금세 국물 한 방울 없이 싹싹 비워지고, 아픈 언니 먹게 좀 두라는 엄마의 성화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였다. 그 후엔 언제 또 그렇게 라면을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라면 두 개를 물 많이 붓고 국수와 함께 끓여 온 가족이 먹었던 기억만 난다. 국수보다 라면이 훨씬 비쌌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나 어릴 적 라면에 대한 기억이다.


지금은 언제라도 마음껏 끓여 먹을 수 있다. 혈당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라면 두 개 정도 끓여서 먹어도 되는데, 그럴 수 없다. 옛날에는 없어서 못 먹었고, 지금은 건강 생각해서 먹지 못한다. 아니 안 먹는다. 정 먹고 싶으면 그렇게 맛없는 라면으로 만들어 먹는다. 그럴 때는 영락없이 옛날 노란 냄비 속에 끓고 있던 그 라면이 떠오른다.


오늘은 건강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라면 하나 오롯이 끓여 먹고 싶다. 본래의 맛을 느끼며 결핍이 많아도 행복했던 그날을 소환해 추억하고 싶다. 남은 국물에 식은 밥 한 숟갈 넣어 말아먹는다면 금상첨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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