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떡과 '코리안 팬케이크' 사이

[조수진의 K-푸드 잉글리시]

by조수진

외국 친구에게 추석을 소개할 때 가장 쉬운 말은 'Korean Thanksgiving(한국식 추수감사절)'이다. 가족이 모여 수확에 감사하며 음식을 나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칠면조 대신 송편이 있고 쇼핑 대신 성묘가 있는 우리 명절을 온전히 담기에는 조금 아쉽다.


미국에서는 Thanksgiving(추수감사절)이 끝나면 곧바로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라는 쇼핑 전쟁이 시작된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원래는 1950~6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 경찰이 추수감사절 다음 날 몰려든 사람과 자동차로 도시가 마비되는 모습을 보고 Black Friday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이후 유통업계에서는 적자를 뜻하는 red(빨강)에서 이익을 뜻하는 black(검정)으로 장부가 바뀌는 날이라는 긍정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한마디로 미국은 명절 뒤 쇼핑몰로 뛰어가고, 한국 엄마들은 연휴가 끝나면 소파에 누워 홈쇼핑 채널을 돌린다. 방식은 달라도 명절 스트레스를 소비로 푸는 건 묘하게 닮았다.


추석의 다른 이름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를 뜻하는 '가위'가 합쳐진 말로, 가을 한가운데의 큰 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Chuseok, Korea's harvest moon festival(추석, 한국의 수확과 보름달을 기념하는 명절)'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욱 이상적이다. moon(달)이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송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솔잎을 깔고 떡을 쪄서 붙은 이름인 송편(松餠)의 '송'은 소나무 송(松)이다. 영어로는 의미의 손실 없이 표현하려면 'half-moon-shaped rice cakes steamed on pine needles(솔잎 위에서 쪄낸 반달 모양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솔잎은 떡끼리 달라붙지 않게 하고 은은한 솔향을 입혀 주며, 떡이 잘 쉬지 않게 돕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송편이 보름달이 아니라 반달 모양인 데도 이유가 있다. 보름달은 가득 찬 뒤 기울지만, 차오르는 반달에는 아직 채워질 여지가 남아 있다. 그래서 송편의 반달에는 앞으로 더 나아지고 복이 차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전해진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덕담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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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는 쉬운 일을 "a piece of cake"라고 하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어 본 경험이 있다면 "Songpyeon is not a piece of cake!(송편 빚기는 결코 식은 죽 먹기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Many hands make light work.(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일이 쉬워진다.)" 여러 손이 모이면 일이 가벼워진다는 뜻이니, 추석 부엌에 이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을 듯하다.


해외 메뉴판에서 흔히 "Korean pancake(한국식 팬케이크)"로 소개되는 전 또한 추석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서양인에게 pancake(팬케이크)는 maple syrup(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는 달콤한 아침 식사이다. 그래서 동태전이나 호박전을 설명할 때는 달지 않고 짭짤하다는 뜻의 savory(짭짤하고 감칠맛 나는)를 붙여 savory pancakes(짭짤한 전)라고 하거나, 반죽을 입혀 부친다는 점을 살려 pan-fried fritters(기름에 지져낸 부침 요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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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먹고 "기름지다"고 말할 때도 단어 선택에 주의해야 한다. greasy(기름이 번들거리고 느끼한)는 부정적인 뉘앙스이고, oily(기름기가 많은)는 비교적 중립적인 묘사이며, rich(맛이 진하고 풍부한)는 칭찬에 가깝다. 시어머니의 전을 칭찬하고 싶다면 "So rich and crispy!(맛이 정말 진하고 바삭해요!)"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지, greasy(느끼하고 기름지다)라고 하면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 있다.


대표적인 K-food(K-푸드, 한국 음식)이자 명절 상에 빠질 수 없는 잡채(雜菜)는 한자 그대로 '여러 채소를 섞은 음식'이다. 흥미롭게도 조선시대의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러 채소와 고기를 볶아 무친 음식이었고, 당면은 20세기에 들어서야 합류했다. 광해군 때 한 신하가 잡채를 잘 만들어 임금의 총애를 받아 높은 벼슬까지 올랐다는 일화도 전해지니, 요즘 말로 하면 음식 하나로 "climbed the career ladder(승진 가도를 달렸다, 출세했다)" 한 셈이다. 영어로는 투명한 당면을 살려 'stir-fried glass noodles with vegetables(채소와 함께 볶은 투명 당면 요리)'라고 K 푸드를 소개하기도 한다.


추석 음식을 영어로 옮기다 보면, 결국 번역하는 것은 음식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반달에 담은 소원, 솔잎에 담은 지혜, 잡채 한 접시에 얽힌 역사까지.

추석은 지났지만, 송편의 반달이 품은 뜻까지 지나간 것은 아니다. 이미 가득 찬 것보다 아직 더 차오를 수 있다는 기대. 어쩌면 우리가 명절 음식에 담아 나누는 것은 맛보다도 그런 마음인지 모른다.


요즘 K-food가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 이유도 비슷하다. 송편의 반달, 전 한 장의 바삭함, 잡채 한 접시에 담긴 역사까지 함께 설명될 때, 음식은 단순한 메뉴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다.

결국 추석 음식을 영어로 옮기는 일은 음식 이름을 번역하는 일이 아니다. K-food에 담긴 한국의 계절과 풍습, 그리고 마음을 함께 전하는 일이다. 명절은 끝났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천천히 곱씹어 보는 것이야말로 꽤 괜찮은 '추석의 뒷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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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미푸드 대표이사

www.ilmi-food.com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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