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의 씨앗을 던져준 사람 - 3 >> 신 편집장님
몇 년 전에 《중쇄를 찍자》라는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만화가와 잡지사 편집자 간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었는데, 소재도 신선했지만 둘의 끈끈한 관계가 마음에 많이 남았다. 그동안 바카라은 작가가 전부 쓰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편집자는 바카라의 교정, 교열을 봐주는 것 이외에도 작가를 빛나게 하는 존재였다. 자기 글이 아닌데도 제 것처럼 소중히 여기고 어떨 때는 더 큰 애정을 쏟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 찡했다.
요즘 그런 감동적인 드라마를 현실의 내가 찍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진심 어린 열정으로 나를 이끌어 주셨던 편집자님. 내가 봤던 바카라의 거의 모든 에필로그에 편집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말이 꼭 한 마디씩 들어 있는 이유를 알았다.
편집자님과는 둘 다 이공계 출신으로 사고회로가 비슷해서 대화가 너무 잘 통했다. '나의 아빠 광호에게'라는 제목도 너무 좋다며 물개 박수를 다섯 번쯤 쳐주었다. 처음 미팅에서 원고의 반 이상은 다시 써야겠다고 웃는 얼굴로 말해주셔서 조금 놀랐지만 느낌이 좋은 분을 만나 즐겁게 작업을 시작했다. 두어 달쯤 흘러 혼자만의 1차 탈고를 마치고 편집자님께 전송을 했는데, 이후 새벽에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꼭 좋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문자를 보는데 심장이 오랫동안 쿵쾅거렸다. 곧장 감사하다고 답장을 보낸 뒤 메시지를 캡처해 두고 며칠을 쳐다봤다. 내 글이 좋다는 말, 그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 머물렀고 지망생이 아닌 진짜 작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싹을 움트게 했다. 편집자님의 당근과 채찍에 휘둘리며 생각보다 빠르게 원고가 완성되었고, 5월 초에 바카라이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다.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한 바카라을 가지고 오신 편집자님과 우리 집 아래에서 만난 게 지난주였다. 혹시라도 중쇄를 찍으면 어쩌죠. 대형서점에서 사인회를 열어주면 어쩌죠. 헉, 저는 사인이 없는데 연습을 해둘까요. 우리는 어둑한 골목에 서서 별의별 호들갑을 다 떨었다.
편집자님은 판매 시작 이후 며칠간 주요 서점 순위를 체크해서 나에게 보내주었고, 출판사로 주문이 몇 부 들어왔는지 안내를 해주었다. 금세 네이버에 빨간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었고, 예스 24 감성/가족 에세이 3위, 교보문고 시/에세이 57위까지 올랐다. 순간일지라도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생각에 신기했지만, 그리 많이 팔린 것 같지도 않은데 순위가 점점 높아지니, 소문으로만 듣던 출판계의 현실을 알게 된 듯해 괜히 씁쓸해지기도 했다.
일주일 정도 계속되던 편집자님의 연락이 점차 뜸해졌다. 순위가 급속도로 하락하는 걸 보고, 무명작가의 첫 에세이인데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여기며 더 이상 검색해보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바카라을 읽어 준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또 다른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다 엊그제 편집자님의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중쇄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데 물류창고가 비었다며, 나에게 어찌하면 좋을지 묻는 말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몰라요, 어쩌죠?'라고 반문했다. 편집자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계약서 다시 쓰자고. 물론 다 팔리지 않으면 몽땅 반품되니까, 그때는 둘이서 리어카를 끌자는 그럴듯한 대바카라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내 바카라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중쇄를 찍자》드라마에서는 만화바카라이 중쇄를 찍게 되면 편집부 팀원들이 모두 모여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한다. 그 마음이 모여 하늘에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그 장면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지금 벅차오르는 이 마음이 아빠에게 닿기를, 아니 닿았을 거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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