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도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세계 <수확자>를 읽고
한 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다. 알 수도 없고 경험했다고 말하기 곤란한 세계가 죽음이다. 반면 좀 역설적이긴 하나 삶의 완성이라 볼 수도 있다.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의 문장이 의미를 갖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마지막이 있어야 한 사람의 삶이 이야기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삶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불편한 조건이다. 그래서 우린 죽음을 삶과 분리한 채 살아가고픈 건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엔 조문하는 일이 꺼림칙했다. 죽음과 마주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조문을 마치면 서둘러 빠져나오기 바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론 마음이 좀 달라졌다. 여전히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지만 내 삶의 일부로 들어오면서 외면할 만큼 꺼려지진 않았다. 나이 든 지금은 죽음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언젠가 닿게 될 삶의 경계로 받아들이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건지 고민하게 됐다.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삶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지 조정하고, 결정하게 한다.
두려움이든 더 이상 낯설지 않든 죽음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결핍이다.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는 그런 결핍이 사라진 세계를 그린 과학 소설이다. '죽음이 존재하는 사망 세계가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나, 제도 안에 개인의 욕망과 권력이 개입하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네, 삶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는 할까'란 생각이 더 깊어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선더헤드'는 전 세계 슬롯 시스템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초고도 인공지능이다. 그 관리 아래 사는 인류는 병들지 않고, 회춘할 수 있으며, 사고로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다. 유토피아나 다름 없는 완벽한 세상임에도 인간의 행복은 정점을 찍지 못한다. 삶에 대한 긴장감이나 절박함도 사라져 외려 무료한 모습이다. 고층에서 추락사하는 걸 취미 삼은 인물도 등장한다. 마치 극단적 체험이라도 하듯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면서. '삶의 권태를 죽음과 재생 사이에서 회복하려는 걸까?' 묻게 했다. 동시에 섬뜩하고 오싹했다.
수확자 집단에 공존하는 양면성
자연적인 죽음이 사라진 세계엔 인구 조절을 위한 수확자 제도란 게 있다. 영원한 죽음을 집행하는 제도지만 결정 과정에 당사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수확자가 느닷없이 찾아와 목숨을 거두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할 틈도 없다. 삶을 사랑하며 맹렬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수확자의 판단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수확자> 세계에선 삶도 죽음도 자기 게 아닌 것이다. 어쩌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가진 사망 세계의 우리가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슬롯로부터 인간의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은 수확자들은 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인류를 가지치기한다는 까다로운 바카라임이 사람의 성격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선 안 되지 않나. 수확자들은 법 위에 있으니 옹졸함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나.(186쪽)
'페러데이'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제도의 명분을 지키며 계명에 충실한 수확자도 있다. 반면 '고더드'처럼 수확자란 직업을 대단한 권력과 명성으로 착각해 제도의 본질을 흐리는 무리도 나타난다.
평민들이 우릴 사랑하는 건 우리가 수확하는 방식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방식 때문이야. 우린 새로운 왕족이라는 역할을 받아들여야 해.(349쪽)
그들이 수확하는 방식은 상당히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수확자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진 것에 반해 견제할 장치가 약해 제도는 점차 변질되어 간다. 개인이 욕망을 실현하도록 법적으로 허용한 꼴이 된 셈이다. 법은 인간을 위한 거지만 권력이 되기도 한다는 게 지금의 현실과 닮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장면이다. 제도를 운영할 인간이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을 간과한 데서 움튼 타락에 노여움이 치밀 듯했다.
삶이 내 것인 것처럼 죽음 역시 내 것이어야 하거늘 <수확자> 세계에선 타인이 인간 생명의 종결을 독점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죽음은 실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인간의 기술은 죽음이 사라진 세계까지 도달했지만 욕망과 권력은 그대로였다. 변질된 제도에 속수무바카라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은 미래에도 버젓이 유지되는구나, 싶어 무력감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거의 모든 것을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세계에서 작가는 죽음만 따로 인간에게 맡겼다. 그 선택은 아마도 인간이 생명과 권력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나쁘지 않은 사망 세계
소설은 내내 죽음이 사라진 세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이 없다면 삶이 삶다울 수 없다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거라고도 전한다. 삶에 끝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지금 곁에 있는 사람, 다시 오지 않을 지금처럼 '지금'이라는 가치가 빛날 수 없다면서.
평소에도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에 미련을 둬 보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 동안 건강하게 살다 부를 때 가는 게 맞다는 생각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장기기증 희망서를 신청해 둔 상태다. 품위를 지키며 평온하게 마무리할 삶의 끝을 고심한 후의 선택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결핍 때문에 미약하나마 삶의 가치를 알아가는 시대를 살았다. 남은 시간도 나쁘지 않다, 삶이 참 예쁘다는 감각 속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