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7일 화요일

제목: 비디오

by스카이쌤 SkySSSam

1998년 4월 7일 화요일

날씨 맑음


오늘 학교 마친 다음 영우형아 집에 갔다. 비디오 많화비오를 빌려왔다. 나는 참 기분이 좋다.



첨삭

오늘 학교를 마친 다음 영우 형아 집에 갔다. 비디오, 만화 비디오를 빌려 왔다. 나는 참 기분이 좋다.




이번 일기는 아주 짧다. 요령껏 글씨도 크게 쓰고 띄어쓰기도 아주 넓게 했는데도 일기장이 절반 가까이 남아있다. 아래에 있는 '오늘의 중요한 일', '오늘의 착한 일', '오늘의 반성', '내일의 할 일'도 깨끗하게 비어 있다. 3월까지만 해도 쓸 말이 없으면 '너무너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떻게든 분량을 채우던 아이가 상당히 대담해졌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보니 이 변화의 정체를 알 것 같다. 간을 보는 중이다. 아이들은 규칙을 배우는 동시에 그 규칙이 실제로 어디까지 적용되는지도 배운다. 날마다 일기를 써야 한다? 오케이, 접수. 그런데 일기를 이만큼만 쓰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실까. 아무 말씀 없으시면 다음에는 여기까지만 써도 되는 걸까. 혼나면 조금 성실해지고, 안 혼나면 한 발짝 더 나가본다. 규칙의 공식적인 경계와 실제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몸으로 찾아가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다. 여덟 살의 내가 그렇게 치밀하게 생각했을 리는 없겠지만, 교사가 되고 보니 이런 아이들을 많이 봤다. 내가 수업 중에 글쓰기를 시키면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몇 줄까지 쓰면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재미있는 건 선생님 쪽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3월에는 새 학년이 시작됐으니 글씨도 바르게, 일기도 성실하게, 빈칸도 잘 채우라고 열심히 지도한다. 그러다 4월쯤 되면 아이들도 어느 정도 파악했고 선생님도 조금씩 현실과 타협한다. 아이가 요령 피우는 걸 알고 계시지만 적당히 날씨만 '대체로 맑음'으로 교정해주시고는 그냥 넘어가셨다. 그렇게 나는 하나를 배웠다. 일기는 매일 써야 한다. 다만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협상의 영역이다.

수요일 연재
이전 06화1998년 4월 6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