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일은 사라진 걸까, 옮겨 간 걸까

by강정욱

일은 사라진 걸까, 옮겨 간 걸까

최근 셀프 계산대를 되레 줄이고 있다는 사례를 접했다. 영상 <사람을 없앴는데 일은 더 늘었다? 셀프계산대의 반전>에 따르면 미국에서 셀프 계산대 때문에 재고 손실이 늘자 직원을 다시 붙이는 마트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월마트는 뉴멕시코의 일부 매장에서 셀프 계산대를 걷어 냈고, 코스트코는 계산대 구역에 직원을 늘렸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워서 관련 연구를 찾아봤다. 지난 6월에 발표된 「Self-Checkout Loss Report 2026」은 소매업체 39곳의 자료를 분석했는데, 상품을 찍지 않고 지나가는 미스스캔이 셀프 계산대 거래의 1%에서 최대 4.8%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실수일 수도, 고의일 수도 있지만 기계는 이를 가려내지 못한다. 그 비율이 결코 작지 않은데, 실수가 끼어들 여지도 많으니 이를 막으려면 다시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영상을 보던 중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무인 매장도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경찰과 법원에게 넘긴 것이니,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여태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인데,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건이 사라진 것을 절도죄로 신고하면 그 일은 경찰과 법원, 곧 슬롯로 넘어간다. 실제로 무인점포에서 1,500원짜리 과자를 결제하지 않은 사람이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가, 헌법재판소가 이를 취소한 사건도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일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옮겨 간 것이 아닐까?


tool-output-0.jpg


병목이 된 리더들

AI 덕분에 하루에도 엄청난 결과물을 쏟아낼 수 있게 되었고, 일은 그만큼 줄었다. 그렇다면 줄어든 일은 누구에게 옮겨 간 것일까? 데이터 분석은 쉬워졌지만, 인사이트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즉, 수많은 결과물을 가려내는 판단은 주로 '리더' 앞에 쌓인다. 그 결과 조직 내 의사결정자들은 AI 시대에 쉽게 병목이 되었다. 결과물을 만들 때 감당했어야 하는 고민과 수고가 이제 '판단하는 자'의 몫으로 넘어간 셈이다.


채용에서도 비슷한 조사가 있다.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하프의 영국 조사에 따르면 채용 담당자의 67%는 AI로 만든 지원서 때문에 채용에 걸리는 시간이 늘었다고 답했다. 사람이 쓴 내용과 AI가 쓴 내용을 가려내고, 추가 면접으로 검증하는 일이 더해진 것이다.


리뷰 작성과 검토도 비슷하다. 리뷰를 쓸 때 AI 도움을 많이 받다 보니 전반적인 퀄리티는 좋아졌는데, 문제는 '양'이다. 실제로 어느 리더는 최근에 진행된 리뷰에서 너무 많은 글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렇다고 중요한 평가이기에 또 AI로 대충 요약해서 볼 수도 없는 일이다. AI를 통해 줄어든 일은 그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자'에게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tool-output-0 (1).jpg


조직의 판단력은 어떻게 쌓이는가?

일은 어디로 옮겨갔을까? 이어서 떠오른 대상은 '고객'이었다. 성의 없는 AI 글이나 이미지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독일 THI의 연구는 직원이 직접 쓴 메시지의 신뢰가 가장 높았고, AI가 보조한 메시지는 신뢰를 더 깎았다고 보고했다. 그 고객의 불쾌감은 결국 일선 직원으로 돌아온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2024년 AI 어시스턴트로 상담을 대체한다고 밝혔다가, 2025년 5월 지나친 자동화가 품질을 떨어뜨렸다고 인정하며 사람을 다시 채용했다. AI로 줄인 일이 고객에게 넘어가고, 그 끝에서 다시 사람을 뽑게 되는 듯하다.


또 하나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조직의 '판단력'은 하루이틀에 쌓이는 역량이 아니다. 어떤 결과물이 괜찮은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능력은 직접 시도해 보고 고쳐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그 과정을 AI에 맡기면 속도는 분명 빨라지지만, 그 대가는 나중에 청구되는 게 아닐까? 사람이 유일한 병목이라고 해서 일과 판단을 모두 AI로 넘기게 된다면, 줄어든 일은 미래의 조직으로 전가될지도 모른다. 물론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느껴진다.


이제 정리해보자. AI를 적용할 때 우린 주로 "무엇을 줄일 수 있을까?"를 묻는다. 조직 입장에서 이해가 가고, 지금과 같은 경쟁 상황에서 그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 질문도 한 번 더 던져 봤으면 한다. "줄어든 일은 누구에게 옮겨 가는가?"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이렇다. "이 일을 계속 맡기게 되면, 우리 조직에는 무엇이 남는가?"


tool-output-0 (2).jpg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원팀을 외치지만, 협업은 왜 여전히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