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5학년 아들과 함께하는 <사피엔스> 토론 수업

<사피엔스:그래픽 히스토리>를 같이 읽고 대화하기

by강정욱


1. 재원이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 되면 지키는 우리만의 루틴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한국사와 글쓰기 수업으로 시작했다. 특히 한국사는 몇 년에 걸쳐 선사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 바퀴를 돌았고, 지난 겨울방학에 마침내 끝이 났다.


2. 이번 여름방학부터는 '빅히스토리'를 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는 주제 중 하나인데, <청소년을 위한 총균쇠>를 비롯해 몇 권을 추천했더니 다행히 흥미로워하더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빅히스토리의 대표적인 입문서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정복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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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처음에는 갖고 있던 <사피엔스>를 읽게 했는데, 인지혁명과 농업혁명까지 읽다가 중간쯤 지나니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사피엔스-그래픽 히스토리> 시리즈를 발견했다. 원작과 내용은 같지만 뛰어난 각색과 그래픽 구성 덕분에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다. 나도 함께 읽었는데 완전히 다른 바카라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림이 더해지니 재원이도 훨씬 수월하게 읽어나갔다.


4. 그렇게 사피엔스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에 '인지혁명'을 주제로 대화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인간은 어떻게 지금의 인간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주제가 워낙 방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관점에서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문화적 관점에서는 조지프 헨릭의 <WEIRD>가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문어로 대표되는 두족류의 진화를 다룬 <아더 마인즈>를 읽었는데, 지금껏 내가 읽은 바카라들을 총동원해 설명해 주었다.


5.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인데 흑인, 백인, 황인종은 왜 다르게 생겼는지, 인종의 구분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했다. 나도 정확한 배경은 몰랐는데, 알고 보니 햇빛 속 비타민 D 합성과 엽산 파괴 사이의 균형 문제였다.


6. 자외선이 강한 적도 근처에서는 체내 엽산을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많은 검은 피부가 유리했다. 반면 추운 고위도 지역에서는 부족한 햇빛으로도 비타민 D를 충분히 합성하기 위해 피부가 밝게 진화한 것이다. 태아에게 필수적인 엽산과 뼈를 튼튼하게 하는 비타민 D, 결국 다음 세대를 무사히 키워내기 위한 진화적 노력이 지금의 다양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7.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것을 넘어 "왜 그럴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인류학, 생물학, 지리학을 넘나드는 대화가 재미있었다. 실제로 이런 수업들이 존재하는지 찾아봤는데, 빌 게이츠의 <빅히스토리 프로젝트>가 있더라. 그 역시 빅히스토리를 접한 뒤 역사를 넘어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는 좋은 모델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고.



image.png출처: https://www.bighistoryproject.com/


8. 가만히 생각해보면.. 파편화된 경계를 넘어 질문을 통해 지식을 엮어내는 경험은,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갖가지 질문에 AI가 바로 답을 줄 수는 있겠지만,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힘 자체는 결국 사람, 그리고 대화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특히 초등학교 학생을 둔 부모들에게 역사 공부를 권하고 싶다. 이 시기는 학업이나 또래 관계 같은 것들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빅히스토리와 같은 큰 관점을 접하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훨씬 더 확장시키고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서 '거리를 두게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10. 또한 교과목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쉽다. 앞선 사례도 피부색의 차이를 통해 지리와 생물학, 인종이 모두 연결된다는 것을 가볍게 배울 수 있었는데, 실제로 빌게이츠의 빅히스토리 프로젝트 연구에 의하면, 해당 공부를 한 학생들은 서로 다른 학문의 개념을 연결하는 연계적 사고력이 대조군에 비해서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11. 결국 초등학생이 빅히스토리를 배우면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지엽적 상황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것들을 연결하는 눈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지식이 범람하고 AI가 정답을 찾아주는 시대라 해도, 새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은 여전히 희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재원이와 나누는 그 대화 자체가 나에게 더없는 즐거움이다. 매주 이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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