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Re): 우리를 또렷하게 만드는 것들

젊었을 때의 나와 다시 연결될 때, 판단이 선명해지는 이유

by제인Jane 진지은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요즘에는 머리가 예전 같지 않아..."

"집중이 잘 안 돼..."

"예전처럼 에너지가 안 생기네..."


그런데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여기에 있다.

일명 엘렌 랭거(Ellen Langer)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


젊었을 때 입던 옷,

즐겨 듣던 음악,

자주 가던 장소들,

또는 그 시절의 잡지나 물건들을 다시 접했을 때,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수준을 넘어

'인지 기능과 활력이 실제로 소폭 회복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추억에 잠긴다'라는 감상적인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향수가 아니라 '자기 연속성'의 문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단순한 노스탤지어(nostalgia)가 아니라,

자기 연속성(Self-continu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쉽게 말해 이런 감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예전의 나와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온 사람이다."





젊은 시절의 물건이나 음악은,

과거의 나를 불러오는 동시에

지금의 나를 다시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


그리고 뇌는 이때,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대신,

이미 익숙하고 의미가 있는 자극 위에서 더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 연구에서도

작업기억이 조금 더 또렷해지고,

집중 유지 시간이 늘어나며,

인지적 경지성이 낮아지는 결과들이 반복적으로 관찰되기도 했다.


이것은 머리가 갑자기 젊어지는 건 아니지만,

머리를 쓰는 데 '불필요한 마찰이 줄어드는 것'을 보여준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길까?




뇌과학적으로도 보면,

이런 자극들은 해마와 전전두엽을 동시에 활성화시킨다.


이 회로는 기억, 판단,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성격이다.


이것은 강한 자극으로 확 치고 올라오는 도파민이 아니라,

조용하지만 안정적인 '긍정 정서'를 만드는 방향이다.


그래서 들뜨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어딘가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나

'살아 있는 느낌'이 생기게 된다.





이 현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는 커리어 상담이나 면접 코칭을 하다 보면,

사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지금의 나는 잘 안 보이고,

예전의 나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고,

미래는 막연해서 더 불안한 상태.


이럴 때 사람들은,

새로운 스펙,

완전히 다른 방향,

대대적인 변화부터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제의 출발점이 자신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정체성의 단절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한 상황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들을 해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는지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상태인 것에 가깝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조언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한 이야기들




나는 상담에서

내담자의 상황에 따라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기도 한다.


"처음 이 일을 선택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이것은 감상적인 이야기나 하자고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사고의 기준점을 되살리는 작업의 시작이다.



젊었을 때의 '나'와 다시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명확해진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무엇을 가져갈지,

그리고 무엇을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말이다.


그 이후 조금씩 방향을 함께 잡아 나가다 보면

우리의 이력서 문장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 면접 답변의 중심이나,

커리어 고민에 대한 해결법도 조금씩 찾을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다시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그 시절의 '나'를

'이미 끝난 사람'

또는 '이미 잊힌 사람'으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떠받치는 자원이자 에너지로 다시 불러와야 한다.


그게 어떤 사람에게는,

예전에 즐겨 입던 옷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때 매일 들었던 음악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소중한 단서'가 되어 줄 것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