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늑대, 야로.
눈 늑대
아리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어. 거울 너머로 창밖에 뾰족한 늑대 귀가 보인 거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성에 자국이었어. 아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외투를 벗지 않았어. 눈이 몹시 많이 오는 추운 밤이었거든.
“아리야.”
아래층에서 오빠가 불렀어. 아리는 꼬마 촛대를 들고 내려갔어. 오빠가 엽총을 챙기고 있었어.
“가방 챙겨. 순백의 악마다.”
순백의 악마는 눈사태야. 아리는 먼 어디선가에서 밀려오고 있는 눈 더미에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 거기 깔린 작은 둥지에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들은 거 같았어. 하지만 실재로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기만 했어. 그게 더 무서웠다는 거 알아? 분명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거야. 눈은 그렇게 무서워.
“아무 소리도 안 났잖아?”
아리는 집을 버리고 가고 싶지 않았어. 거긴 아리네 집이었으니까.
“소리가 들리면 늦지. 불빛 신호가 왔어.”
아리는 가방을 맸어.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방은 항상 챙겨 놓지만 매번 안에 넣고 싶은 게 달라져서 큰일이야. 이번에도 아리는 엄마의 결혼 예복을 가져가고 싶어서 한참 망설여야 했어. 정말로 중요한 성냥이나 주머니 칼, 비닐 끈, 설탕 조각을 안에 꿰맨 옷을 입은 오빠는 아리를 혼내려다가 그냥 자기 가방을 열었어.
“가져가. 다시 못 올지도 몰라.”
오빠와 아리는 손을 꼭 잡고 밖으로 나갔어.
달은 얼음 등처럼 차가웠어. 아주 밝은데 조금도 따뜻하지 않았어. 아리는 달이 섬뜩하고 흉흉한 괴물의 외눈 같다고 생각했어.
길에서 옆집 사는 아지와 만났어. 하지만 둘 다 인사하지 않았어. 눈사태가 나면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더 빨리 눈을 무너지게 한대.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빨리 걷기만 했어.
낮은 등성이에서 아리는 집을 돌아보았어. 그러다가 오빠 손을 놓쳤고, 어른들 발에 채여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어. 아리는 오빠를 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낼 수가 없었어. 마지막으로 본 오빠의 얼굴은 울고 있었던 거 같아. 아리도 울었어.
아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얀 어둠 속에 누워 있었어. 하야면서 어두울 수 있다니 이상하지만 정말로 하얗고 어두웠어. 사람들 소리는 하나도 안 났어.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눈은 소리를 먹어. 소리를 먹고 점점 크고 무서워지지. 하지만 아리는 안 울었어. 울면 소리를 듣고 오빠가 찾아내 줄지도 모르지만, 주위를 둘러싼 눈이 무서웠어. 울면 더 더 더 무서워질 거 같았어.
그때 늑대 앞발이 불쑥 아리 이마를 눌렀어. 아리는 깜짝 놀랐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털장갑을 낀 손인 거야. 아리가 그 손을 덥석 잡자 굉장한 힘이 아리를 눈 더미 속에서 끌어냈어.
“괜찮아?”
아리를 끌어낸 건 키 작은 아줌마였어. 빨간 늑대 털옷을 입고 있었는데 흰 눈 때문에 더 빨개 보였어. 빨간 늑대는 무척 드물어서 아리도 한 종류 밖에 몰라. 그 늑대가 아빠를 잡아먹었고 복수하러 나간 엄마는 아직 안 돌아왔어.
아리는 아줌마가 빨간 늑대 옷을 입고 있어서 무서운 한편으로 안심됐어. 빨간 늑대를 잡은 힘센 어른이니까 키가 작아도 괜찮았어. 어차피 아리에겐 할아버지를 뺀 어른은 그냥 다 어른일 뿐이었거든
“가자, 여긴 위험해.”
아리는 아줌마의 손을 잡고 걸었어. 아줌마는 아리에게 인사하지도, 이름을 묻지도 않았어. 둘은 눈이 두려운 사람들처럼 조용히, 빠르게 걷기만 했어. 아줌마는 아리가 느리다고 불평하지 않았어. 언제나 아리보다 반걸음 앞서서 아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나뭇가지나 수풀을 거둬주기만 했어. 그래서 아리는 훨씬 빨리 걸을 수 있었어.
“왜 거기 있었니? 눈이 무너진다는 거 몰랐어?”
등성이 하나를 넘어 조금 안전해지자 아줌마가 물었어. 정말로 안전해지려면 한참 더 가야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말을 해도 됐거든.
“오빠를 잃어버렸어요.”
“다른 등성이로 갔나 보다.”
아줌마는 주변을 둘러보았어. 아리는 배가 고파졌어.
“아줌마는 총도 없고 가방도 없네요?”
아줌마는 웃었어.
“오다가 다 잃어버렸어.”
아리는 중요한 걸 다 잃어버렸는데도 웃는 아줌마가 이상했어.
“너 사탕 같은 거 없니? 다들 갖고 다니던데?”
아리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걸 아줌마도 들었어. 아리는 고개 저었어. 괜히 가슴이 콩콩댔어. 원래 오빠가 아리 가방에 사탕을 넣어놨었는데, 나오기 전에 토끼 인형을 넣느라 몰래 뺐거든.
“우리, 뭔가 좀 필요하겠다.”
아줌마는 먼 곳을 보았어. 아리한테는 안 보였지만 설광에 유리처럼 빛나는 아줌마의 갈색 눈은 산 중턱의 오두막을 보고 있었어. 둘은 한참 걸어서 오두막에 도착했어. 창가의 불빛이 흥청대는 술잔처럼 흔들리고 시끌벅적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어.
“여기는 하얀 악마가 안 와요?”
아줌마는 아리의 말을 듣지 못한 거 같았어.
“잠깐 기다려.”
아줌마는 아리를 2층 계단참 밑으로 숨겼어. 그리고 문을 반쯤 열고 필요한 것들을 집어던졌어. 아리는 성냥이랑 짧은 칼이랑 딱딱한 빵이랑 언 고기가 떨어지는 데로 주워 모았어.
“이건 도둑질이잖아요?”
아줌마는 장갑을 입에 댔어. 아리는 얼른 입을 다물고 숨었어. 커다란 아저씨가 아줌마의 앞을 가로막는 게 보였어.
“여어, 야로가 아닌가?”
아저씨는 술에 잔뜩 취해서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어.
“그래, 나야.”
아리는 아줌마가 혼날까 봐서 겁이 잔뜩 났어. 그런데 아저씨는 아줌마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어.
“그때 내가 네 남편을 죽였지. 미안하게 됐어.”
아저씨가 말했어.
“응. 나도 네 팔을 먹었고, 내 애도 굶지 않았으니 됐어.”
아리는 아줌마랑 아저씨가 참 이상하게 말한다고 생각했어. 어른들은 원래 다 그렇지만 말이야. 조금 있다가 야로 아줌마는 커다란 우산 겸 눈 지팡이를 들고 내려왔어.
“하얀 악마가 온다고 아저씨한테 말해줬어요?”
“응.”
집안에서는 다시 고래고래한 노랫소리와 술병 부딪치는 소리가 났어.
“아저씨는 도망 안 가요?”
야로 아줌마가 싱긋 웃었어. 날카로운 이빨이 진주처럼 반짝였어.
“응, 안 간대. 그 사람은 용감한 사냥꾼이거든. 가자. 해뜨기 전에 안전한 곳에 도착해야 해.”
아리는 야로 아줌마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걸었어. 숲이 깊어져서 달빛이 가끔 없어졌지만 눈이 빛나서 둘은 그럭저럭 갈 수 있었어. 아리 혼자 만이었다면 아마 한 발짝도 더 못 갔을 거야. 하지만 야로 아줌마가 붉은 털을 빛내며 표표히 걸어 나가면 선명하게 남은 발자국을 밟고 아리도 갈 수 있었어.
“잠깐.”
갑자기 야로 아줌마가 멈춰 서서 귀를 쫑긋 세웠어. 작고 뾰족한 코를 벌름이며 대기의 냄새도 맡았어. 아리도 코를 킁킁였지만 눈 냄새랑 젖은 나무 냄새 밖에 안 났어.
“왜 그래요?”
“우린 모몰로의 땅에 들어왔어.”
“모몰로?”
“희고 근사하게 생겼는데 잔인한 놈이지.”
아리는 덩치 큰 백인 사냥꾼을 생각했어. 분명히 눈썹이 굵어서 무척 험상궂게 생긴 남자일 거야.
“빨리 지나가는 게 좋겠다.”
아리의 손을 쥔 야로 아줌마의 손은 차갑고 땀에 젖어 있었어. 너무 차가워서 아리는 둘의 손이 얼어서 철썩 들러붙어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됐어. 야로 아줌마는 재게 걸으면서 하늘을, 숲의 어둠을, 발밑을 번갈아 살폈어. 달이 한참 기울어 있었지. 어둠은 까맣게 녹은 설탕처럼 농밀했어. 아리는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어. 집에서 너무 멀리 너무 빨리 모르는 곳에 왔기 때문 일거야. 사실 아리는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없는 곳에 온 건 처음이거든.
“괜찮아.”
야로 아줌마의 손이 아리를 꼭 잡았어. 아리는 안심이 되었지만 점점 손이 아파졌어. 야로 아줌마는 잔뜩 긴장해 있었어.
“내 말 잘 들어. 아리.”
아리는 너무 긴장해서 야로 아줌마에게 이름을 말한 적이 없다는 걸 몰랐어.
“저기 속 빈 큰 나무가 보이지?”
아리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야로 아줌마가 가리키는 정확한 방향을 마음에 새겼어.
“내가 손을 놓으면, 저리로 뛰어 들어가는 거다.”
“네?”
왜냐고, 무슨 일이냐고, 아리는 묻고 싶었지만 야로 아줌마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걸 알았어. 얼어붙은 것만 같던 야로 아줌마의 힘센 손아귀가 살그머니 벌어졌어. 아리는 두 사람의 손바닥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에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어.
“아리, 뛰어!”
바람처럼 달려드는 짐승의 노린내가 아리에게 훅 끼쳤어. 아리는 덫을 건드린 토끼처럼 뛰어나갔어. 뒤에서 ‘절대 돌아보지 마!’라고 야로 아줌마가 외쳤어. 아리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나무 구멍 속으로 구르듯이 처박혀서 꼼짝도 안했어. 나무 밖에서 ‘어흥’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거기 맞서 길게 짖는 늑대 소리가 들렸어. 모든 것이 너무 크고 가깝게 들려서 나무껍질 속에 웅크린 아리의 심장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 같기도 했고, 딱딱한 껍질 너머 먼 산에서 울리는 짐승들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야로 아줌마. 야로 아줌마.”
아리는 주변에 큰 짐승이 두 마리 이상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어. 근데, 야로 아줌마는 혼자야. 괜찮을까? 아줌마는 엽총도 없이 눈 지팡이 하나뿐인데.
아리는 겁이 나서 눈물이 줄줄 흘렀어. 아빠는 겨울 사슴을 잡으러 갔다가 빨간 늑대를 만나서 돌아오지 않았어. 엄마는 탄창에 불을 켜고 나갔지. 아리와 오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아리는 그게 너무 속상했어. 아이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혼자 살아남는 건 끔찍한 일이야. 아리는 두 번 다시 그런 걸 겪고 싶지 않았어.
늙은 나무 틈새로 날카로운 빛이 느껴졌어. 등 뒤는 야로 아줌마가 홀로 싸우고 있는 어둠이었지만 앞은 새벽이었어. 아리는 썩어서 물러진 반대편 둥치를 억지로 비집고 달려 나갔어
“도와주세요!”
으르렁 컹컹대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어. 아리는 빛이 밝아지는 쪽으로 달리며 멀리 등불이 보이는 곳을 향해 외쳤어.
“살려줘요-!”
아리의 메아리를 따라 긴 총성이 아리 위로 날았어. 아리는 순간 밤이 확 뒤로 걷히고 아침의 땅을 밟고 있는 듯 한 착각을 느꼈어. 등 뒤엔 침묵의 절망과 어둠이, 앞으로 디딘 한 발엔 아침의 희망과 용기가 있었어.
“애야!?”
큰 발소리가 아리 옆을 지나갔어. 아리는 어느새 몸이 눈 더미 속에 묻혀 있다는 걸 깨달았어. 언제 빠진 걸까. 어젯밤 오빠를 잃어버리고 눈 더미에 묻힌 채로 얼어 죽어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리가 방에서 머리를 빗는데 창밖에 뭔가가 비쳐 보였어. 창틀에 낀 늑대 귀모양의 성애는 진짜 늑대 그림자였고, 수풀 속의 빨간 피딱지는 붉은 늑대의 발이었어. 아리는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어. 부드럽고 축축한 늑대의 혀가 아리의 손을 핥았고, 아리는 침 묻은 손이 얼도록 가만히 있었지만 빨간 늑대는 이미 가 버리고 없었어. 그리고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
아리야.
“엄마?”
아리는 손을 휘저었어. 하지만 어둠 속엔 엄마도 빨간 늑대도 없었어. 그냥 희고 캄캄한 어둠뿐이야. 아리는 너무 슬펐어. 슬픔이 가슴에 뭉쳐서 소리 내어 토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어.
“어엉!”
아리는 제 울음소리에 놀라 깼어. 낯선 오두막의 나무 천장이 보였어. 녹슨 청동 램프가 흔들리고, 빛이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 공기는 싸늘했지만 이불속은 따뜻해서 아리는 금방 정신을 차렸어.
“허어. 대단한 꼬맹이가 대단하게 깼구먼.”
아리는 자기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남자를 봤어. 피부가 희고 눈썹이 사납게 짙은 남자였어. 아리는 흠칫 몸을 사렸어.
“모몰로?”
“모몰로? 어린애도 그 이름을 아나? 허참. 놈이 무섭긴 무서운 가보지. 하지만 이제부턴 걱정할 거 없단다. 이 아저씨가 놈을 잡았으니까. 그리고 유명한 빨간 늑대 야로도 잡았지. 다 네 덕분이다. 네가 불러주지 않았다면 놓칠 뻔했으니까.”
“빨간 늑대 야로?”
“허어? 모몰로는 알면서 야로는 몰라?”
사냥꾼은 아리를 안아 올렸어.
“담요를 꽉 잡아라. 밖은 추우니까.”
사냥꾼은 아리를 뒤뜰로 데려갔어. 거기엔 작은 눈 산과 붉은 흙더미가 나란히 쌓여 있었어. 가까이 가 보니 눈 산은 집채만 한 흰 호랑이고, 붉은 흙더미는 야로의 털옷이었어. 아리는 겁이 났어.
“야로 아줌마는요? 아줌마는 괜찮나요?”
“허어? 거기엔 아무도 없었단다. 있다면 늑대 뱃속이겠지.”
붉은 흙더미 앞에 추려낸 내장이 쌓여 있었는데 그 속엔 사람 머리카락이랑 이가 잔뜩 섞여 있었어.
“나쁜 늑대야. 사람을 얼마나 많이 잡아먹었는지, 저 머리카락 봐라. 저런 게 뱃속에 수두룩했다. 나뭇잎 모양 은반지도 나왔단다. 누군지 가족을 찾아 돌려줘야지.”
아리는 주머니를 뒤적이는 사냥꾼 팔에서 내려 담요를 끌고 갔어. 늑대는 뱃속이 텅 빈 채로 쭈욱 뻗어 있었지만 눈이 아직 살아 있는 거 같았어.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상냥한 갈색 눈이야. 아리는 마음이 아파서, 눈을 꼬옥 감았어.
“반지에 아리라고 써 있을 거예요.”
“어, 어떻게 알았지?”
“엄마랑 제 이름이에요.”
사냥꾼은 의아해하면서 아리에게 반지를 주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꼬마야?”
아리는 대답하지 않고 빨간 늑대 야로를 가만히 쓰다듬었어. 눈물이 흘렀지만, 야로의 뱃속에서 나온 엄마의 반지 때문에 슬픈지 야로 아줌마 때문에 슬픈지 알 수 없었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