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46] tvN <포핸즈> 비오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1회, 비오)
드라마 전체에 흐르는 격정적인 피아노 선율 그리고 그 선율만큼이나 격정적인 우정을 나누는 두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포핸즈>. 드라마의 1회 주인공 비오(송강)는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할아버지 승운(정진영)에게 이렇게 항변한다.
이 말은 상담심리사로 만나온 많은 내담자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실을 찾는 이들 중 대다수는 어떤 충족되지 못한 욕구 때문에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들을 겪는다. 그 핵심에는 부모처럼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의 존재이든, 재능이든, 노력이든 인정받지 못한 부분은 응어리로 남아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분야를 막론하고 서열화하고 최고만을 인정하는 한국의 능력주의는 인정의 폭이 매우 좁다. 그렇기에 충분히 노력하고 나름의 성과를 이룬 사람들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강렬한 대사로 문을 연 드라마 <포핸즈>는 바로 이런 한국식 능력주의와 비오의 충족되지 않은 인정 욕구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그려낸다. 비오를 통해 능력주의와 인정 욕구의 합주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려 한다.
인정받지 못한 노력
비오는 피아노를 몹시 사랑하고, 재능도 겸비한 인재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비오는 어린 시절 그런 자신과 어머니 지혜(윤세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승운의 시선을 느끼며 자란다. 그럴 때마다 비오를 위로해 준 건 음악이었다. 비오는 피아노를 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동시에 재능을 꽃피워 간다.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유망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저명한 지휘자인 승운은 음악에 진심인 비오에게 늘 냉담하기만 하다. 비오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억울함을 드러내자 이토록 모질게 말한다.
"고작 이 정도의 실력으로 억울함을 운운한 거냐. 목적 없이 욕망만 득실득실한 그런 연주를 가지고? 내가 세 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인간이 위대한 음악을 한다고 해서 자신도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놈들이야." (1회)
비오는 이런 할아버지 앞에서 매번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인정받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어머니 지혜의 인정 욕구까지 더해진다. "아비도 없는 자식을 낳아 왔다"며 냉대하는 승운의 시선 속에 지혜는 비오를 주목받는 피아니스트로 만들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아버지의 인정을 얻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 비오를 각종 콩쿠르에 내보내 성과를 보여주려 하고, 혹시나 1등을 하지 않을까 봐 몹시도 불안해한다. 그러면서 비오가 조금이라도 자기 뜻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 때문에 이러고 사는데"(2회)라고 한탄한다. 지혜의 이런 태도는 비오에게 큰 압박이 된다.
비오의 심리적 갈등
비오는 불우한 환경에 있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음악을 즐기는 정요(이준영)를 만난 후 즐겁게 음악하는 법을 알아간다. 정요와 함께 포핸즈 공연을 하며 행복을 느낀 비오는 콩쿠르에 나가라는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고는 정요의 기숙사에서 함께 지낸다. 이 시기 비오는 "이전으론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야"(4회)라며 경쟁 대신 즐기는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인정 욕구는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보다 강하다. 승운이 자신이 아닌 정요를 협연 대상으로 선택하자 비오는 콩쿠르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기로 결심한다. 정요에게 같은 대회에 나갈 것을 요구하고 그 콩쿠르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정요를 이기려 한다. 하지만, 정요의 존재를 늘 불안해하던 지혜는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비오를 1등으로 만들려고 하고, 결국 정요 납치 사건을 벌인다. 이 사건은 그 후 오랜 기간 비오를 옭아맨다.
인정 욕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비오는 정요가 실종된 후 승승장구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지휘자가 된 정요가 또다시 승운의 인정을 받아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가 되자 복잡한 감정에 휘말린다. 비오가 실종된 정요를 찾아다닐 때 도움을 준 브로커의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은 게 뭡니까? 미스터 최의 생존입니까 아니면 죽음입니까?"(6회)라는 말은 비오의 갈등을 정확하게 짚은 말이었다.
인정 욕구는 비오의 삶을 관통하며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저명한 정신분석가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속한 슬롯에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내는 정체감, 그러니까 페르소나의 원동력이 바로 '인정 욕구'라 했다. 슬롯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사람들은 그 슬롯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가면을 쓰고, 이를 상황에 맞게 바꿔 쓰며 슬롯에 적응해 간다. 즉, 인정 욕구가 있기에 우리는 슬롯적 자아를 형성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융에 따르면 슬롯적 성공에 대한 인정은 '아버지'로부터 온다. 아버지가 없는 비오에게 할아버지 승운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수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서도 승운의 인정 없이는 비오는 결코 충만해지지 못한다.
인정의 기준이 달라진다면
그런데 승운이 인정하는 기준은 '천재성'이다. 승운은 4회 "음악이란 건 말이야 단 한 사람의 천재가 나타나서 모든 걸 바꿔 놓고, 새롭게 만드는 놀라운 작업이야. 그런 걸 개나 소나 하겠다고 덤비는 걸 보면 난 화가 나"라고 자신의 음악관을 표현한다.
이는 재능에 기반한 능력과 성과만을 기준으로 삼는 '인정'이다. 재능마저 능력의 일부로 보는 강력한 능력주의의 세례를 받은 신념이라 할 수 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의 획기적인 연주가 음악을 발전시킨다는 그의 신념 안에서 적당한 재능을 지닌 이의 열정과 노력은 쓸데없는 짓에 불과해진다. 그래서 승운에게 타고난 천재인 정요의 음악은 훌륭하지만, 열심히 노력해 재능을 꽃피운 비오의 음악은 늘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승운의 기준이 과연 절대적인 것이었을까. 음악의 발전이 한 명의 천재가 만들어낸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며, 이를 통해 위안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데 있다고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피아니스트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비오는 충분히 차고 넘치는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결과보다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을 의미 있게 보아주었다면 어땠을까. 비오의 노력만큼은 인정해 줄 수 있었을 테고, 정요가 할아버지의 선택을 받더라도 비오는 자기 자신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 수 있었을 거다.
승운이 인정하는 기준이 좀 더 유연하고 다양했다면, 비오와 정요는 서로를 견제하느라 쓰는 에너지를 줄이고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인정 욕구는 그 자체로는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인정 욕구 때문에 노력하고, 슬롯적 자아인 페르소나를 형성하고 발전해 간다. 하지만, 그 인정의 기준이 '획일적'이고 '결과론적'인 능력주의에 기대고 있기에, 많은 이들이 불행해지거나 심리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비오처럼 말이다. 10회 은퇴를 앞두고서야 승운은 비오에게 이렇게 말하며 응원한다.
"이제 와보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은 인생을 담은 음악이다. 그러니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음악을 하고 싶은 니 마음을, 니 인생을 음악에 담아라." (10회)
이 조언이 실행되려면, 우리 삶이 다양하듯, '인정'의 기준도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 '인정'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담자와 대화 나누면서 종종 하는 작업 중 하나가 '인정'의 기준을 다시 세워보는 것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그 기준이 획일적인 슬롯적 산물임을, 다양한 기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내담자는 자신을 조금 더 '인정'하게 되곤 한다.
다양한 삶 그리고 다양한 삶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노력과 과정이 인정받을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가진 인정 욕구가 보다 폭넓게 채워지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천재가 만드는 획기적인 발전도 필요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노력을 인정받고, 이 노력이 모아져서 발전을 이뤄낼 때 행복한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어쩌면 그 분야를 통해 행복해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게 더 진정한 발전일지도 모를 일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