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 작아서 남은 문
30년이 넘은 20평대 복도식 아파트였다. 건너편 허허벌판에서 그대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복도를 타고 현관까지 밀고 들어왔다. 집 안 온도가 그만큼 떨어졌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뽁뽁이로 싸고 비닐로 감싸면서 온 겨울을 버티고
견뎌냈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해서 놀란 것은 외부의 찬기가 그대로 철문을 타고 들어오며 현관문의 금속 손잡이가 손의 체온을 통해 쩍쩍 들러붙는 것이었다.
복도에 창호가 있었지만 얇은 알루미늄 새시의 단창은 제대로 바람막이가 되지 못했다.
난방비가 매달 폭탄으로 나온다고 했다. 소음도 그 바람을 타고 같이 들어왔다.
이런 집엔 중문이 꼭 있어야 한다. 외부 한기, 소음, 방범의 3가지 기능을 하는 중문의 역할이 이런 집이야말로 꼭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였다.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예산이 없었다.
대출받아 산 집이라 인테리어 예산도 빠듯했고, 더 이상대출도 안된다고 했다. 중문 때문에 더 빚을 얻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테리어 예산의 50% 이상이 얇은 새시와 수돗물이 새는 주방에 투입되었다. 도저히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만들 방법이 없었다.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고 돌아왔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중문 디자인 사이트에서 문짝 카탈로그를 뒤지며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타공형 중문 디자인들을 보다 문득 몇 달 전 일이 떠올랐다.
필라테스 스튜디오 대표가 문에 뚫린 원이 작다고 컴플레인을 했었다. 그래서 원을 크게 만들어서 다시 맞춰 만들었다. 그럼 처음 만든 그 문은 어떻게 됐더라...
스튜디오 창고로 갔다. 올해 초에 넣어 두고 그대로 잊고 있던 문이었다. 스튜디오 대표도 잊었고, 우리 팀도 잊었다.
룸에 맞는 사이즈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옆에 프레임을 짜고 고정유리를 끼워 문짝에 맞췄다. 컬러와 디자인을 비슷하게 넣으니 원래 한 세트처럼 보였다.
그리고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완전 개방형 디자인은 이 아파트에 안 맞았다. 스튜디오에는 원이 작아 폐쇄적이라 안 어울렸던 그 문이, 겨울바람을 막아야 하는 이 복도식 아파트에는 오히려 맞는 디자인이었다.
예쁜 손잡이까지 달아놓으니 백만 원이 넘는 문이 되었다. 원가에 공임을 합쳐 견적에 넣을까 고민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기억해 내지 못했으면 창고에서 몇 년을 더 썩었을 물건이었다. 인건비는 다른 공정에서 조금 여유가 났다. 그 여유로 메우고, 내가 부담하기로 했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그 젊은 아내에게 먼저 알리기로 했다. 먼저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에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해 둔 참이었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살짝 날이 서 있었다. 또 추가 비용 이야기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창고에 있던 문 이야기, 사이즈를 맞춘 이야기, 비용 이야기를 순서대로 했다. 얘기가 끝나갈 때쯤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비용 때문에 계속 마음을 졸였다고 했다. 주변에서 다들 인테리어 하면 나중에 추가 금액을 많이 부른다고 해서, 더 예민하게 받았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그렇게 생각했던 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업체들이 실제로 있다. 나도 그런 오해를 받아 본 적이 있다.
문은 그 집에 그렇게 달렸다. 밖에서 들어오는 찬 바람이 복도에서 멈췄다. 그 부부는 나중에 친구네 집도 소개해 주었다. 시간과 비용이 맞지 않아 그 집 일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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