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이라는 시간을 함께 견디며
문이 닫히고 안은 잠시 고요해진다.
벽면의 숫자들이 제각각 불을 밝히고 있다.
저 불빛이 하나씩 꺼질 때마다
누군가의 목적지도
목록에서 지워질 것이다.
발바닥으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기계가 밧줄을 당겨 올리는 진동이자,
지구가 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 수직의 상자 안에서
중력이라는 시간을 함께 견디며
천천히 흐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지만
우리는 서로의 행선지를 묻지 않는다.
층수가 바뀔 때마다 생기는
짧은 멈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정직한 이동.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내 차례를 기다린다.
서두를 수도,
과정을 건너뛸 수도 없다.
지금은 그저
‘이동 중’이라는 사실만이
선명할 뿐이다.
마침내 불이 꺼지고
문이 열리면
나는 내리는 쪽을 선택한다.
발을 내디디는 순간
중력은 다시 평범해지고,
방금까지의 이동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복도의 정적 속으로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