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대표 기자 활동 시절
첫 기사보다 먼저 배운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었다.
삼성 여러 사업부를 대표하는 미디어삼성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을 때, 기사를 쓰기 전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사수였다. 제일기획에서 오랫동안 글을 다뤄온 그는, 내가 보지 못하던 지점을 짚어주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원고를 들고 가지는 않았다. 소재 몇 개를 뽑아 사수 앞에 늘어놓으면 그중 하나를 짚으며 물었다. "이 사람을 왜 인터뷰해야 하죠?" 대답이 궁색하면 소재부터 다시 골랐다. 어렵게 소재를 통과시켜도 다음 질문이 기다렸다. "독자가 이걸 읽고 뭘 얻어가죠?" 흥미로운 이야기와 읽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는 다르다는 걸 그때 배웠다. 원고를 써간 뒤에도 훈련은 이어졌다. 제목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게 왜 여기 있어야 해요?"라고 묻고, 문단 순서를 통째로 뒤집어보라고 했다.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도 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면 독자는 뭘 하고 싶어 질까요."
돌이켜보면 그는 기사를 잘 쓰는 법을 가르친 게 아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곳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만날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었다.
훈련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기사 하나를 쓸 때마다 매번 다시 시작됐다.
첫 소재는 발이었다. 흔히들 발레리나나 축구선수의 발은 사람들이 아름답다 말한다. 그럼 우리 회사 사람들의 발은 어떨까—익숙한 대상을 낯선 자리에 놓고 다시 바라봤다. 서울 병원을 매일 뛰어다니는 영업사원의 발, 강원도에서 무거운 장비를 포장하는 사원의 발, 사하라 사막에서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출근하는 엔지니어의 발.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발이라는 사물 하나로 꿰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발들이 결국 회사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내가 작성한 첫 기사이자, 회사 포털 메인에 소개되었고, 예상보다 많은 동료들의 응원을 받았다.
이후, CHI(Computer Human Interaction)라는 학회에 참석할 일이 생겼다. 본래는 내부 보고를 위한 출장이었다. 그런데 학회장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SF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눈앞의 기술로 구현되고 있었다. 같은 현장을 보고도 보고와는 완전히 다른 글이 나왔다. 같은 곳에 서 있어도 무엇을 발견하는지가 달랐다.
이어서 쓴 건 의료기기를 디자인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디자이너인데 왜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을까,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사용하지 않는 의료 환경 속에서, 의료진과 환자를 위한 제품을 디자인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병원으로 나가 방사선사 곁에서 촬영 과정을 지켜보고, 의사를 인터뷰하고, 임상 전문가에게 검증받는 과정을 거쳤다. 아름다운 곡선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계였다. 이 시기에 쓴 기사들은 여러 차례 회사 포털 메인에 소개되었다. 그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은 게 아니라, 익숙한 소재를 다른 시선으로 다시 보려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에게 담긴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낯선 도시에서 스친 얼굴들을 기록했고, 설명할 수 없던 마음은 짧은 문장이 되어 시로 남았다. 어떤 날은 한 줄만 쓰고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소설 속에 걸어 들어갔다.
돌아보면 내가 배운 것은 글쓰기 기술이 아니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글에만 머물지 않았다. 종이 위에 선을 긋고 색을 올리는 순간에도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그곳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