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UN] 제81차 유엔 총회

신뢰 회복인가, 실행력의 위기인가?

벌써 2026년 9월, 제81차 총회의 문턱에 와 있다. 매년 가을이면 뉴욕 맨해튼의 터틀 베이는 세계 정상과 외교관들이 모여드는 지정학적 축제이자 각축장으로 변한다. 칠레 대표단으로 제65차부터 제71차 총회까지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유엔 총회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도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치열하고도 여전히 필요한 다자외교의 무대였다.


지난 9월 8일 개막한 제81차 유엔 총회(UNGA 81)의 일반토의(General Debate)는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뒤 28일에 마무리된다. 올해의 공식 주제는 “신뢰 회복과 변혁 관리: 모두를 위해 성과를 내는 유엔(Restoring trust, managing transformation: A United Nations that delivers for all)”이다. 평화와 개발, 기후와 기술을 둘러싼 복합위기가 동시에 심화되는 시점에서 ‘신뢰’와 ‘성과’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 유엔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유엔재단(UN Foundation)이 20개국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역시 이러한 역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응답자의 84%는 유엔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52%는 필요한 조직임에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엔이 시대에 뒤떨어져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본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결국 이번 총회의 질문은 유엔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필요한 유엔이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는가에 가깝다.

제81차 유엔 총회 일반토의 연설자 목록


세 가지 실존적 위협

지난 9월 16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국제슬롯가 직면한 세 가지 실존적 위협으로 통제 불능의 인공지능(AI), 기후위기, 그리고 심화되는 불평등을 꼽았다.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 국가가 단독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범세계적 도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AI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위험에 대한 이해와 국제규범 형성의 속도를 앞지르면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구테흐스는 개별 국가의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안전하고 투명하며 바카라임 있는 AI를 위한 국제적 조정과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역시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와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소도서개도국(SIDS)에게 기후변화는 환경정바카라을 넘어 국가 생존과 지속가능발전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도 기후행동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해수면 상승이 별도의 고위급 의제로 다뤄지며, 개발재원 부족과 과도한 부채, 기술 접근성의 격차가 글로벌 사우스의 취약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AI와 기후, 불평등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위협과 도전에 기존의 국가 중심 국제질서가 어디까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


전쟁의 시대

중동의 복합위기와 러-우 사태의 장기화는 국제법과 다자주의 체제의 실효성을 다시 시험하고 있다. 문제는 규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합의된 원칙을 현실에서 일관되게 적용하고 이행할 정치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중동에서 긴장 완화(de-escalation), 외교(diplomacy), 대화(dialogue)를 강조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부합하는 ‘정의롭고 지속적이며 포괄적인 평화’를 향한 첫 단계로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 촉구를 구체적인 정치적 성과로 전환하는 과정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유엔의 오래된 구조적 긴장이 다시 드러난다. 총회에서는 193개 회원국이 각 한 표를 행사하지만,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일차적 바카라임은 안전보장이슬롯가 맡고 있으며 회원국들은 유엔 헌장에 따라 안보리의 결정을 이행할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중대한 국제안보 현안에서 유엔의 대응 역량은 안보리의 제도적 권한뿐 아니라 상임이사국 간의 정치적 합의에도 크게 좌우된다. 9월 29일에는 핵무기 완전 폐기를 위한 고위급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핵군축이라는 오랜 과제 역시 이러한 현실정치와 제도적 제약 속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SDGs의 위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성적표도 낙관적이지는 않다. 2015년 193개 회원국이 합의한 2030 의제는 목표연도까지 불과 몇 년을 남겨두고 있지만, 2026년 현재 평가 대상 가운데 36%만 정상 궤도에 있거나 중간 수준의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15%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보건과 빈곤, 식수 접근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이행 속도는 충분하지 않다. 2030년을 향한 마지막 구간에서 국제슬롯가 다시 ‘이행 가속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이번 총회 기간에는 발전권 선언 40주년, 해수면 상승, 팬데믹 예방·대비·대응, 더반 선언과 행동계획 25주년을 다루는 고위급회의도 연이어 열린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의 문제로 묶는다면, 질문은 새로운 목표를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합의한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재원과 제도를 어떻게 확충하고 개선할 것인가이다. 개발재원(Financing for Development), 개도국의 부채 부담 완화, 국제금융체제 개혁과 2030년 이후의 글로벌 개발체제에 대한 논의가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지속가능발전 논의의 무게중심은 선언적 약속에서 실질적 이행과 성과 창출로 옮겨가야 한다.


마지막 구테흐스 총회와 차기 사무총장

이번 고위급 주간(High-Level Week)은 올해 말 임기를 마치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에게 사실상 마지막 유엔 총회 고위급 외교무대가 된다. 2027년 1월 1일부터는 제10대 유엔 사무총장이 조직을 이끌게 되며, 차기 사무총장 선출 절차는 이미 후보자 공개대화와 타운홀(Town Hall) 등을 거쳐 진행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유엔재단 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이러한 선정 절차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유엔의 향후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지도부 교체가 일반 시민에게는 여전히 낯선 외교 절차로 남아 있는 셈이다.


대중이 기대하는 지도자의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조사에서 내부 개혁을 우선하는 지도자를 선호한 응답은 17%에 그친 반면, 분쟁을 중재할 외교가가 28%, 글로벌 위기에 대응할 위기관리자가 26%, 인권과 범세계적 위협에 목소리를 낼 도덕적 지도자가 25%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은 주권국가 위에 군림하는 세계정부의 수장이 아니라 회원국의 정치적 의지와 유엔 헌장이 부여한 권한 사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국제공무원이다. 차기 사무총장의 리더십 역시 권한 확대 자체보다, 제한된 권한 속에서 회원국 간 이견을 조정하고 다자협력을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하는 능력에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칼릴루르 라흐만 유엔 총회 의장


신뢰는 선언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21세기 다자주의의 정당성은 무엇을 선언하느냐보다 무엇을 실제로 이행하고 성과로 보여주느냐에 점점 더 좌우되고 있다. 전쟁과 기후위기, AI와 불평등처럼 어느 국가도 홀로 해결하기 어려운 범세계적 도전은 늘어나는데 이를 관리해야 할 국제제도의 대응 역량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제도에 대한 신뢰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올해 총회의 공식 주제에서 ‘신뢰 회복’과 ‘성과를 내는 유엔’을 함께 제시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변곡점에서 우리와 같은 중견국의 외교적 역할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와 우주개발을 비롯한 신흥 국제규범, 기후·해양, 소도서개도국 지원, 개발재원, 국제법과 다자제도 개혁처럼 강대국 간 이해가 일치하기 어려운 분야에서는 중견국의 가교 역할과 국제규범 형성에 대한 기여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최근 우리 정부에서도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국제 현안의 ‘규범 형성자’로 역할을 확대하고, 중견국 간 연대를 통해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기여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견국 외교의 강점은 강대국처럼 국제질서를 강제하는 데 있지 않다. 선진국과 개도국,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서로 다른 지역과 이해관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유사입장국과의 연대를 통해 실현 가능한 협력 의제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외교부 역시 과거부터 범세계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견국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을 조정하는 가교 역할과 새로운 국제규범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해 제80차 총회 글에서 나는 유엔이 “극장이자 실험실이자 고백의 장”이라고 썼다. 제81차 총회 역시 전쟁을 단번에 끝내거나, 기후위기를 해결하거나, AI의 미래를 하나의 규칙으로 묶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들이 서로 다른 이해와 원칙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국제규범을 논의하며, 때로는 작은 합의를 축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편적 다자무대라는 사실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총회가 던지는 질문은 유엔이 필요한가가 아니다. 필요한 유엔을 어떻게 다시 작동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웅대한 선언도, 더 긴 정상 연설도 아닐 것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국제슬롯의 합의를 이행으로 옮기고, 약속을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하는 능력이다.


총 7편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유엔 총회에 대해 글을 연재한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2011년 제65차 회기부터 2017년 제71차 회기까지 총 7차례 칠레 VIP(국가원수)의 의전 경험을 토대로 작성했다. 내가 근무했던 당시와 현재의 총회 규칙과 절차에는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편은 유엔 총회 의장 선출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34)

2편은 대표단 참석 및 신임장 제출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35)

3편은 유엔 총회 의제 및 결의안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36)

4편은 주요 위원회 및 고위급 주간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37)

5편은 유엔 총회 회의 기록 및 의전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38)

6편은 유엔 총회 뉴스 및 미디어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39)

7편은 경험 및 교훈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40)


제78차 유엔 총회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79)

제79차 유엔 총회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130)

제80차 유엔 총회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203)


유엔에는 일반 토의 전용 웹사이트가 있는데, 독자분들은 다양한 언어로 된 연설문과 녹취록을 찾을 수 있고, 라이브 시청도 할 수 있다. (https://gadebate.un.org/en )


이어서 읽으면 좋은 글

· 유엔 사무총장 선거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157)

· 왜 유엔본부(UN)는 뉴욕에 있을까?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41)

· 유엔 회원국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62)

· 유엔 회원국 그룹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70)

· 유엔 회원국 분담금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109)

· 뉴욕, 인디스펜서블 아일랜드 (https://fishingproductfr.com/@sangyeobkim/226)


(사진 출처: 개인소장, 유엔사무국)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국제기구 #해외취업 #유엔 #외교 #국제관계 #UN #UNGA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