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에서 건너온 논문 한 편이 묻는다
테헤란에 근무하는 칠레 외교관 친구가 논문 한 편을 추천했다. 제목은 <국제질서를 쓰고, 불안을 질서화하다, Writing International Order, Ordering Insecurity>(Jérémy Dieudonné & Oliver Turner, 2026)였다. 제목부터 묘했다. 우리는 국제질서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배워 왔다. 그런데 이 논문은 한 걸음 비켜서 묻는다. 국제질서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끊임없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인가?
저자들의 주장은 도발적이다. 유엔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동맹과 조약은 분명 실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국제질서’라고 부르는 순간에는 정치적 선택이 개입한다. 더구나 정치 지도자들은 안정된 질서를 현재형으로 말하지 않는다. 질서는 늘 과거에 있었고, 지금은 흔들리며, 미래에 복원돼야 한다. 트루먼도, 아이젠하워도, 닉슨도 국제질서를 완성된 현실이 아니라 아직 세워야 할 목표로 말했다. 오늘 우리가 그리워하는 안정된 과거는 당시에도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다.
멕시코와 파나마, 에콰도르와 미국, 방글라데시와 자메이카에서 살아보며 나는 ‘질서’가 지역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미국에서 질서는 동맹과 규칙, 제도의 언어로 들렸다. 파나마에서는 운하와 무역로의 안정이었다. 멕시코에서는 치안과 이주의 문제였고, 에콰도르에서는 성장과 제도에 대한 신뢰였다. 어떤 나라에서는 국제질서의 위기가 전쟁보다 빈곤과 불평등, 취약한 국가 역량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강대국이 말하는 질서와 시민이 체감하는 질서는 자주 어긋났다.
논문은 이 틈을 ‘불안의 질서화’라고 부른다.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말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다. 동맹을 결집하고, 군비와 산업정바카라을 정당화하며, 누가 질서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를 가르는 언어다. 미국은 자신을 질서의 수호자로, 중국과 러시아를 도전자로 묘사한다. 중국도 유엔 중심 질서를 옹호하면서 미국의 ‘규칙 기반 질서’를 패권의 포장이라고 비판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쓰지만, 질서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그렇다고 모든 질서 담론을 선전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법치, 열린 시장, 예측 가능한 규칙은 실제로 작은 나라와 중견국을 보호해 왔다. 문제는 규칙의 존재가 아니라 선택적 적용이다. 규칙을 말하는 나라가 스스로 예외가 되고,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이 힘의 사용을 자동으로 정당화할 때 신뢰는 무너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강대국들의 문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실제 규칙인지, 누구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지, 우리의 안보와 무역, 기술과 해양 이익이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자유와 법치를 지지하되, 수사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폐허부터 찾을 필요는 없다. 먼저 그 문장을 쓴 사람의 바카라상 위를 살펴야 한다.
독자 여러분도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어떤 길이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지 고민해 보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옥스퍼드아카데미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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