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능 ADHD의 고민

'통제감' 대신 '주도성' 되찾기

by마인드리프

주변에서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기준을 세워두고, 촘촘한 루틴으로 자기를 관리하고, 여러 일을 동시에 굴리며 늘 바쁘게 사업을 이끄는 사람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어느 순간 조용히 무너집니다.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남들이 보면 별일 아닌 며칠을 보낸 뒤 아침에 몸이 천근만근이고,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죠. 그리고 자신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게을러졌지?'


높은 성취욕과 재능을 갖췄지만 동시에 ADHD를 가진 분들이 자주 겪는 고민입니다. (임상적 단어는 아니지만 이런 분들을 '고기능 ADHD'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런 분들께 공감이 될 만한 코칭세션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아래 이야기는 고객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1년 넘게 코칭을 이어온 외식업 프렌차이즈 대표님이 있습니다. 보통 새벽 운동을 마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세션에 오시던 분인데, 얼마 전엔 방금 잠에서 깬 얼굴로 온라인 세션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말했어요.


"요즘 그냥 다 무너지는 것 같아요. 일이 안 굴러가는 건 아닌데, 저는 기운도 없고 정신은 멍하고… 하루가 생산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어떤 상황이 변했나요?"
"그 변화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계세요?"
"그 상황에 대해, 그리고 나의 대응하는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진짜 변한 것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탐색 질문을 통해 일련의 에피소드를 함께 살펴본 결과, 눈에 띄는 발견이 있었습니다.


"삶의 통제감을 상실한 느낌이에요."


대표님은 최근 일손이 부족해 며칠씩 주방에 직접 들어가 몸을 써야 했습니다. 하루종일 바쁘게 일했지만 '이건 대표로서 할 생산적인 일이 아니야'라는 해석이 붙었고, 그렇게 하루가 소모적인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은 지치고 기분은 가라앉아 있으니,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뜰 힘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렇게 그의 하루를 지탱하던 루틴(새벽 운동, 계획 세우기, 진행 중 프로젝트 점검하기)마저 하나씩 놓게 되었습니다.


쉬는 날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습니다. '미뤄뒀던 일을 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그 생각이 커질수록 '지금은 그럴 에너지도 없고 의지도 없어'라는 생각이 맞서면서 결국 미루게 됐어요. 몸은 쉬고 있지만 죄바카라감이 착 달라붙어,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정신적 소진만 남았습니다.


이 두 흐름이 매일 겹쳐지면서 '내가 내 하루를 끌고 가지 못한다'는 통제감 상실이 쌓였고, 통제감이 무너지니 루틴은 더 무너지고, 루틴이 무너지니 통제감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됐습니다. 그 끝에 남은 게 무기력이었어요.


특히 고기능 ADHD 분들은 자기 삶을 빈틈없이 통제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하지만 기능적, 정서적 기복이 크기 때문에 그 통제를 늘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에 대한 역량 기대치를 컨디션 좋을 때의 '잘 기능하는 나'를 기준 삼기 때문에, 상황이 뜻대로 안 되거나 컨디션이 받쳐주지 못할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좌절감과 무기력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럴 때 붙잡아야 할 건 '통제'가 아니라 '주도권'입니다.


통제는 상황과 결과를 내 뜻대로 만드는 힘이라면, 주도권은 그 상황 안에서 내가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할지 고르는 힘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어도, 주도권은 언제나 가지고 있어요.

주도권을 찾기 위해서는 '의미'를 만드는 작업 필요합니다.


"이번 주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신가요?"

"어쩔 수 없이 직원 대신 주방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대표님이 말했습니다.


"이번에 주방에 새로 직원이 오는데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경험을 만들고 싶네요. 현장에서 무엇을 개선하면 좋을지 직접 관찰하는 것도 좋겠네요."

"갑자기 대표님이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소모적인 시간이 아니라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시간처럼 들리네요."

"맞아요! 갑자기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 드는데요?"

"주도권을 되찾으셨네요."


한 시간 남짓한 대화가 끝나갈 무렵, 대표님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후 남은 시간에는 노트를 펼쳐 미뤄두었던 일 중에서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일들과 과감하게 내려놓을 일들을 나누고, 회복에 필요한 작은 실행 계획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의 의미가 회복되자, 그 시간에 밀려 사라졌던 루틴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겁니다.


"공허함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알맹이가 다시 생긴 것 같아요. 오늘 세션 끝나고 운동부터 가야겠습니다"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주방에 들어가야 하는 일정도, 체력도 그대로였어요. 바뀐 건 오직 하나,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였습니다. 그것만으로 수동적인 하루가 주도적인 하루가 됐고, 에너지가 돌아왔어요. 물론 한 번의 재해석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마리는 늘 여기서 풀립니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채 게으름을 의심하고 죄바카라감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이 두 가지 질문을 건네고 싶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에, 나는 현재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요?
그리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요?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로 바꾸는 순간, 전혀 다른 하루가 되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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