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성고혈압
병원 진료실에 앉으면 혈압계 커프가 팔을 조여온다. 간호사가 팔에 밴드를 감고, 버튼을 누르고, 기계가 웅웅거리며 부풀어 오르는 그 몇 초 동안 나는 늘 이상하게 숨을 참는다. 숫자가 뜨고, 의사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140에 90이네요. 평소에도 이래요?"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집에서는 정상이다. 회사 건강검진 때도 정상이었다. 유독 이 방, 이 의자, 이 사람 앞에서만 숫자가 치솟는다. 이것이 백의성 고혈압이다.
이 진단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내 몸이 고장 난 게 아니라, 내 몸이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병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에게 결함이 있다"고 해석하지만, 백의성 고혈압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몸은 아주 정확하게, 아주 예민하게 작동하고 있다. 다만 그 예민함의 방향이 조금 과할 뿐이다. 흰 가운을 보면,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 평가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 심장은 미리 알고 뛰기 시작한다. 아직 아무 말도 듣지 않았는데, 아직 아무 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위험할 수도 있다"는 쪽에 베팅을 해버린다.
이 에세이는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따라가 보려는 시도다. 백의성 고혈압은 병이 아니라 번역기다. 내 몸이 "지금 나는 긴장하고 있어"라고 숫자로 말해주는 것뿐이다. 문제는 혈압이 아니라, 그 신호를 평소에 읽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불안을 느끼고도 그것을 그냥 지나친다. 가슴이 조이는 걸 느끼면서도 "괜찮아, 별일 아니야"라고 덮어버리고, 정작 몸이 보내는 세밀한 신호들 — 어깨의 긴장, 얕아진 호흡, 손끝의 냉기 — 은 놓쳐버린다. 백의성 고혈압이라는 명확한 수치는 그 무시해왔던 신호를 눈앞에 들이밀어준 셈이다. 이 열 편의 글은 그 숫자 하나가 열어준 질문, "나는 언제, 왜, 얼마나 긴장하는가"를 하루하루의 불안 속에서 따라가 보려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