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를 입은 사람> 시슬롯 후기
아이가 태어난 지 70일쯤 되었을 때였다. 남편과 꼭 가보고 싶은 영화 시슬롯가 있었다. 아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나가야 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만큼은 보고 싶었다.
영화 제목은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감독이 쓴 바카라 <0원으로 사는 삶>은 집에 소장하고 있으며 이미 읽은 적이 있었다. 영국에서 일년 살기 하면서 알게 된 바카라이었다. 런던의 살인적인 물가에 허덕이면서도, 바카라을 읽고 큰 용기를 얻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카라이었다.
영화는 바카라과 또 달랐다. 첫 장면에 런던 풍경이 나왔다. 몇 년 전 살았던 도시인데,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거리를 보며 잠시 추억 여행을 했다. 동시에 그곳에서의 생활도 떠올랐다. 물가에 놀라고 생활비를 걱정하면서도, 나는 바카라 속 저자가 했던 도전들을 직접 시도하지 못했다.
돈 없이 살아가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길가에 놓인 쓰레기봉투에서 아직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꺼내 먹는다고? 낯선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여행할 수 있다고? 바카라을 읽을 때도 놀랐지만, 영화 속에서 저자가 실제로 그 시간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니 그 일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화면을 통해 대신 따라가며, ‘아, 저렇게 사는 것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박정미 감독이 런던에서 돈을 쓰지 않고 살아보려는 여정에서 출발해, 자급자족 공동체에서 지내고 버려지는 음식을 먹으며 히치하이킹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건너는 과정을 담는다. 돈과 소유를 중심에 둔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고 관계 맺는 삶을 직접 겪어보는 기록이다. 영화 제목의 ‘담요를 입은 사람’은 누더기 담요를 두르고 떠돌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며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는 너무 자본주의의 틀 안에 갇혀 사는 건 아닐까. 돈을 벌고, 필요한 것을 사고, 더 많이 소유하는 일이 삶의 당연한 순리처럼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나도 지금 당장 히치하이킹을 하며 무계획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도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당장 저자와 똑같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저자의 여정을 보며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고정관념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됐다는 점이다.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에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삶의 방식이 유일한 답은 아닐 수 있다는 것. 지금의 기준을 조금씩 깨고 나가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선택지도 만날 수 있다는 것.
영화는 내게 어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오래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을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