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커서는 친구 사귀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깊은 '우정'을 나누기 힘들다고도 말한다.
나는 이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살아오며 운 좋게 모두 같은(혹은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며 사람들은 수많은 낯선 관계 속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들은 사람들 간 다양한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이로 인해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관계에 조심하는 것이 많아지게 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던 옛날과 달리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또 상황 속에서 타인들과의 유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도 하고-.
조심성이 늘어나며 연애도 힘들어지고, 깊은 우정을 나눌 친구 역시 사귀기가 드물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더욱 깊고 끈덕진(?) 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성인이 된 후 형성된 자아, 그 자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드물지만 본인과 꼭 맞는 관계를 찾게 되었을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여 시작은 힘들지만, 한 번 스타트를 끊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는 게 성인들 간의 관계 같다.
그저 모든 관계가 자연스레 내 주위로 몰리던 과거와는 다르다.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 동료, 혹은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꼭 맞아떨어져서 대화가 기가 막히게 잘 통하는 온라인 게임의 선/후배, 예전에는 그저 가볍게 알아가던 서로의 관계를 지나쳐- 이제는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된 사랑에 빠진 연인들, 기타 등등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는 '상황 속에 놓였기 때문에' 그저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이 되었지만, 자유의지가 생겨난 성인은 온라인 게임 내외의 곳에서 본인이 원하는 관계를 어느 정도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온라인 게임 내에서 불필요한 관계를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도 본인과 마음이 맞는 관계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우정은 희한하게도 과거 학창 시절 철없던 우정과는 사뭇 다른 심연의 깊이를 가진 것 같다.
나 역시 어렸을 적 불알친구들과 여전히 가벼운 만남과 추억 가득 담긴 우정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 맺게 된 수많은 우정들은 이상하리만치 깊은- 다른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뭐랄까, '전우애'에 가깝다.
'전장에 놓인 상황에서 서로 등을 내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 말하면 조금은 설명이 될까.
각박한 슬롯의 수많은 전쟁터들. 그곳에 내던져진 채로 죽을 때까지 온갖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나. 그런 내게 누군가는 동료가 되어 늘 함께 최전선에서 적진으로 같이 돌파한다. 또 어떤 이는 내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휘관이 되어주기도 하며, 다친 내게 의무병이 되어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이도 있다. 패배할 것 같은 불안감 속에 구세주처럼 등장한 동맹국의 증원군,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내가 갈 방향을 알려주는 신앙적 존재 혹은 멘토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이들이 '전우애'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피어난 이 '전우애'라는 것은 확실히 코 묻은 시절 나누던 풋풋한 '우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살핌을 받던 내가 스스로를 바카라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목숨을 내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적군'을 가려내기 위한 자신들만의 필터를 씌웠다. 그것은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이제 우리는 다른 군인들의 보호를 받던 약자가 아니니까.
다들 소총 한 자루 들고 전쟁터로 나간 늠름한 군인들이기에.
전장에서 만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아군'과 '적군' 어느 쪽인지 선별하려고 많은 이들이 발버둥 친다. 그리고 드디어 등을 내어줄 수 있는 '전우'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 수많은 '선별기준' 뒤켠에 있던 긴장감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다.
그렇게 쌓이는 다양한 종류의 우정들은 정말이지 소중한 것이다.
무려 '전장'에서 다져진 것들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