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대상이 있었다. 별 거 아니었다. 고향에 두고 온 고양이들이었다. 내 반려 고양이가 아니라 수능 공부를 하면서 , 학교를 그만둘 각오를 하고 도전해본 두번째 수능 공부를 하면서 다녔던 도서관의 고양이들이었다. 외로움과 고독함과 미칠 것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고양이들이 보고 싶다는 글을 썼다. 그게 내가 미쳐 날뛰는 나의 우울 불안 생각 고통 모두를 그나마 해소하거나 토해낼 수 있게 해 준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너희는 나를 살리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생각에 잠식되어 삶이 늘 생존모드였다. 타고난 우울인지 나의 불행한(어쩌면 현재진행형인) 환경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둘 다 일것이다. 나의 불행한 첫 환경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그 우울과 불안을 유전자로 받아서 나는 첫 숨을 내뱉었을테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미친듯이 살고 싶었다. 가능하면 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삶은 나를 봐주지 않았다. 사람들도 나를 봐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나도 남을 보지 못하니까. 헤아리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보란듯이 모든 일들은 나를 벅차게 만들었고 숨만 쉬어도 칼에 찔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들은 글을 써서 겨우 넘겼으리라.
아무튼 여전히 세상은 거지같았다. 그런데 내 성격도 마찬가지로 거지같았다. 이렇게 징징거리는 것 치고 난 반격과 변경과 실행이 굉장히 빠른 편이다. 모든 특성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이런 특성으로 난 적을 많이 얻고 적을 많이 썰었으며,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었고 아이러니하게 그런 사람이라 편하게 살기도 했다. 그나마 글을 쓰면서 해소를 해서 이 정도 반격이었지 모든 나의 짐을 이고지고하다가 반격을 했으면 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한 획을 스스로 그었을지도 모른다.
잘 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꾸준히 편하게 썼다. 글을 쓰려다보면 아무래도 삶의 여기저기에서 소스를 얻어야한다. 그러다보니 내 삶의 하나하나에 집중하거나 특이한 요소가 있으면 기록을 했고, 본능적으로 특이한 요소들을 경험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에 기꺼이 들어갔다.
카페를 찾아가고 모임에도 들어가보고 바카라도 읽어보고 공부도 해보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다양한 온라인 모임을 해보았고 신기하게도 평범하게 엔지니어를 준비하던 기계공학과 졸업생은 기획,마켓팅에 발을 들이게 된다. 지금 나의 직무는 10년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래, 내게 글쓰기는 아주 작은 시도나 습관이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음을 실감하게 해 준 행위이다. 그러니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밖에 없다. 이게 더 좋은 인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하나의 습관이나 변화가 삶의 방향을 천천히 아주 크게 틀어버림을 알았다. 그걸 알았기에 나는 나의 삶의 좋은 변화를 믿고 기꺼이 새로운 행동들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글쓰기가 아니어도 지금 작은 무언가가 꾸준히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변화를 일으키는 기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걸 알려준 글쓰기를, 나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