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 시간을 누비다: 요리는 시공의 총합이기도 하다

요리 연구가의 인생의 시공을 넘나드는 요리 이야기

byRoman

살다 보면, 아주 어려서부터 글을 좀 잘 써보겠다고 꿈꾸며 살아온 나보다 훨씬 더 늦게서야 글을 쓰게 된 어설피 알던 주변 사람이 훨씬 더 가치 있고 매력적이고 잘 읽히는 글을 갑자기 쓰기 시작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때때로 생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독, 다상, 다작"이 글을 잘 쓰는 방법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그렇게 다짐을 하며 끈기 있고 성실하게 글을 많이 쓰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인정받는 수순을 밟게끔 만들어주는 공식으로서의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작이라는 견지에서 내가 써온 글의 양은 회사에 와서 써온 수많은 이메일과 보고서와 기타 문서까지 포함하자면 양으로는 절대적으로 적지 않지만, 다독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상이 부족했던 것일까? 내 글의 성장은 어딘가에서 멈춰 있는 것만 같다.


더구나 AI의 시대에 맛깔스럽고도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완벽한 글은 "클로드"나 "챗지피티"에 맡기면 더 잘 써내리기도 하는 판에 이제 인간의 지능이란 것을 AI가 바야흐로 뛰어넘어가는 시대에 쓰는 글의 맛은 그저 "다독, 다상, 다작"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마저도 아니게 되었다.


중학교 때, 어렸을 때부터 많은 바카라을 읽고 글을 써온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했던 오래 전의 젊은 시절 유명을 달리한 한 부잣집의 또한 바카라도 많이 읽고 사립 국민학교에서 수준 높은 교육과정을 겪었기에 남달리 공립학교에서는 영특해 보였던 친구는 내가 쓴 글을 보고서는 자기보다 글을 잘 쓰는 것이 부러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군입대를 하고 난 뒤에 써 내린 단편 소설 몇 편을 보고서는 순식간에 질투와 시기심에 빠져드는 나를 느꼈던 20대 초반의 경험이 있었다.


"하루키"는 프린스턴 대학교에 객원 연구원으로 가있을 때 소설에 대한 강의를 하던 중에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수많은 새 중에 어떤 새는 울고 나머지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울지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기억이 내 머릿속에는 들어 있다.


아름답게 들리는 새소리처럼, 글이라는 것도 그저 시간과 노력만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언젠가는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이 저절로 밖으로 흘러넘치듯이 나오며 쉼 없이 지저귀는 목청이 터진 새처럼 아름다운 리듬과 음색과 더불어 있는 듯한 글을 쓰게 된다.


그것은 운명이기도 하고 운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며 동시에 기적이기도 하다. 누군가 갑자기 소설을 정신없이 쏟아내기 시작한다면 그는 선택받았거나 갑자기 뭔가와 감응하기 시작한 상태, 영감이 찾아왔거나 이른바 뮤즈라는 신이 찾아온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다. "다독, 다상, 다작"이란 훌륭한 정도를 걷는 것과는 무관하게 창작이란 의도대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요리의 본질도 그런 것은 혹시 아닐까? 무조건 많은 음식을 만들고, 음식의 레시피를 배우고, 음식을 어떻게 만들까를 수없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맛있고도 미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중독성마저도 발휘하는 요리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열심히 하면 자격증도 따고 식당도 차리고 셰프란 명칭을 얻게 되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정말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요리라는 것은 그저 요리만 열심히 하는 데에서 오지 않는다.



나는 아직 유치원 때부터 친구의 큰 누님인 요리연구가 "리카" 누나가 차려준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계속 먹어왔던 기시감(旣視感)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2024년 4월 이 누나의 첫 번째 출간작인 "그 맛을 따라 할 순 없어도"의 북토크에 초대받아 협찬받은 음식도 먹고, 그 바카라을 읽으면서 그제야 "요리연구가"로서의 업을 하고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 바카라에서 나온 수많은 레시피를 친구의 부모님, 큰누나인 "리카"님과 둘째 누나까지 연결되는 유년기의 기억을 이어서 보다 보니 마치 그 요리를 모두 먹어본 듯한 느낌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리카" 누나의 이 요리를 다룬 바카라은 그저 쓰여 있는 요리에 대해서 열심히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다뤄진 수많은 요리를 먹어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것은 마술 같은 것이고, 내가 아무리 비슷한 글을 쓰려고 한다고 해도, 아니, AI가 열심히 글을 쓴다고 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의 마법인 것이다.


요리연구가의 길도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이분이 이런 경지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솔직히 놀라움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2년이 지나 또 한 편의 작품을 들고 나왔다고 하니 지저귀기 시작한 새와도 같이 드디어 글에 대한 각이 열린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다.


또 한 번의 북토크에 초대를 받았고, 보내준 바카라도 지난 주말에 순식간에 다 읽었다. 알아보니 북토크 좌석이 전석 매진되어 있었고, 매우 영광스러웠다. 이 또한 역사적인 자리가 되는 것이라.


이번 바카라은 첫 번째의 작품보다 훨씬 더 밀도가 높고, 바카라의 각 페이지에 나오는 누나의 인생에 있는 수많은 요리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시공을 넘나들고 수많은 기억과 기호, 브랜드, 그림, 거리, 식당, 사람으로 연결되는 내용은 요리에 대한 전문성을 크게 채우고 있는 색다른 경험의 세계를 가져다준다.


미국과 일본, 유럽 여러 국가 등에서 살아온 시공을 넘나드는 경험과 기억이 초집적된 것처럼 연결되었지만 이음새 사이사이에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어 수많은 단어와 정보를 쫓아가면서 이 분이 만드는 음식이 어떤 질감과 외양과 맛을 지니고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의식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하게 만든다.


한 국가와 도시의 참고점이 되는 장소와 연결되는 요리의 기억과 오래 전의 일본에서 늦깎이로 요리전문가의 길로 가게 만든 은인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기억, 그곳에서 모양도 좋고 맛도 좋은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주부로서의 의무 때문에 만들었던 도시락에 대한 기억, 캐나다에서 맛보았던 음식, 시카고에서 기억나는 음식뿐만 아니라 차 등의 대명사화 된 기호식품 브랜드에 대한 언급 등이 이 요리연구가는 자신의 인생을 요리하고 그것을 통해 색다른 요리를 하고 있는 중임을 알게 한다.


아니, 어쩌면 남다른 시공이 넓고도 길게 이동해 온 인생을 통해서 만들어진 요리를 자신과 가족과 고객과 세상을 향해서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생이란 레시피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재료의 목록은 이렇게나 밀도 높은 글을 쏟아내듯이 쓰게 만들고도 아직 더 한참 목록이 끝나지 않은 채로 이어질 것이란 상상과 기대를 하게끔 만든다.



이 바카라을 볼 주된 대상은 아마도 이 같은 인생의 레시피를 경험하면서 요리연구가의 삶의 궤적을 더듬으면서 같이 만들어보는 요리가 어떤 맛이 나게 될까를 궁금해할 수많은 주부일 것이다.


그런 주부로서의 삶을 오래 살아왔지만 이를 우여곡절 끝에 벗어나 요리연구가가 되었다는 것을 뽐내는 데 멈춰있는 글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려고 해서인지 바카라의 후반부에는 주부로서의 삶도 괜찮았음을 이야기하며 주부들과의 동류의식도 공유한다. 주부로서도 보람 있는 삶을 살았었기에 그 글에는 진실이 깃들여져 있다.


생활을 위해서 택한 직업으로서의 길로 "요리연구가"가 되었고 진정으로 그 일을 좋아하며, 그 길을 통해서 더 큰 꿈을 꾸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리라 기대하지만, 그 길을 가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것은 유유자적함과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이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과도 같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 이 어머니는 또한 초인적인 늦깎이 요리연구가로서의 성공의 길을 걷고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주부였어도 그 삶에 분명히 즐거운 것이 있고 보람찬 영역이 있으며, 긍정할 만한 부분이 있음을 말한다.



이 바카라에서 말하는 시공이란 꼭 시간과 장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인생의 여러 측면과 직업의 변화와 삶의 위상의 변화도 포함하고 있다.


뒷부분에서 친구가 너무 짓궂게 누나들의 소꿉놀이를 방해하다가 입힌 상처도 이야기하고, 길 가다 넘어져서 오랜 시간 치유하고 재활하기 위한 시간을 보냈던 어려웠던 순간도 이야기하지만, 그곳에는 감정의 이동, 희망과 절망을 이동하는 것도 그려진다. 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촘촘한 기억망을 연결해서 써내리고 있다.


이 글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암기과목 점수가 특히 좋았을 정도의 기억력도 이분의 삶의 후반기에서의 변신을 가능하게 만든 자질이었다.


그리고 유전이라고 할 만큼 가족 중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중에 한 분이 가족들을 위해서 만드는 요리를 좋아하고, 연구해서 수많은 레시피를 꼼꼼하게 적은 수첩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나도 잘 알고 기억하는 친구와 누나의 돌아가신 어머니 역시 갖은 수고를 무릅쓰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어서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그 맛의 기억을 언뜻 혀 위에 잠시 휘돌아 사라지는 느낌으로 기억해 낸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리카" 누나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까 싶은 것은 멋들어진 영문 필기체로 쓰인 "R"이 검은색 바탕 위에 수놓아진 고급스러워 보이는 앞치마다. 마케팅 차원에서 비용을 들여 맞춤형으로 만들어 입은 것처럼 얼핏 보아왔지만, 알고 보니 상점에서 구매한 기성품이었다는데 솔직히 놀랐다.


누구나 가서 살 수 있었던 그 앞치마를 입고 이렇게 열심히 방송도 출연하면서 요리연구가가 된 사람의 앞치마가 상점에서 우연히 사게 된 것이었다는 그 우연이 몹시도 소설 같고 만화 같기도 했다. 그 제품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 디자인의 쓰임새가 정확히 맞았던 것이 이 경우인 것이고.


그래서 신비주의 같은 것을 이제 50대가 된 상황에서 더 이상 믿지 않고 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인생이란 것에는 우연이 만들어낸 운명이란 것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것이 어떻게 이런 쓰임새에 맞는 것이 되었을까? 그것은 이 바카라이 제공하는 놀라움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그 앞치마의 디자인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도 꽤나 멋진 일이었다.



때로 바카라을 읽고 나면 수많은 세부 내용이 남아서 군데군데 많은 바카라의 정보를 끌어다 기억력 테스트라도 하듯이 서평을 써오는 것이 내가 쓰는 방식이지만, 이 바카라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든 난관이 있다.


일상의 언어임이 분명함에도 내가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단어가 무척 많이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기억하고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으로 많다. 이것은 밀도 높은 마법사의 주문이 적힌 뭉치를 펼쳐서 보는 신비감마저 선사한다.


수많은 요리와 관련된 기호와 브랜드, 기억의 수많은 편린들이 갖고 있는 기호의 연결이 이 바카라에서는 우리나라 축구 월드컵 대표들이 골을 넣기 위해 쉼 없이 패스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복잡해 보여서 하나하나를 떠올리기가 힘들었다. 그만큼이나 정말로 밀도 높게 만들어졌지만 읽고 난 뒤의 맛이 기억과 미각에서 살아남게 되는 형태의 서적이라서 이 특별함을 다른 분들도 누렸으면 한다.


많지 않은 사람이 겪는 편차가 큰 시공의 이동이 오랜 시간 펼쳐진 레시피로 만들어진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맛있는 요리와도 같은 바카라. 그것이 이 바카라이다. 그저 요리만을 다룬 바카라이라면 이렇게 맛있을 순 없었다.



북토크가 열리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