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언즈 교수는 애매모호한 사람이야. 결론이 이미 자기에게 있는데도 그걸 제대로 드러내질 않으니....... '진실'은 그대로 있지만 수용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이는 거 아냐? 절대적으로 답이 하나일 경우도 있잖아. 유사어인 '진리'로 해석하자면, '절대 진리'라는 것도 있듯이 말이야."
진은 그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서민 계층이었지만 추첨으로 수백만 분의 1의 확률을 통과해서 메인프레임 입출력자 교육과정에 들어가 엄청난 신분 상승 기회를 잡게 되어 엄청나게 감사해야 하는 수강생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전혀 없진 않았다.
물론, 케언즈의 수업 방식은 시대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수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진은 그 수업에서도 자신이 그저 하나의 기계적인 기능을 가진 한낱 도구로만 가공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케언즈는 심오함과 정밀함, 그리고 선문답 방식과 힌트 제공으로 제자들의 내면에 있는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은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자들의 성장 방향을 정해 유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자율을 가장한 타율이라고 할지 아니면 타율을 자율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글세, 난 그런 그의 방식에서 진정한 스승으로서의 자세를 보고 있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관능미를 느끼게 될 정도야. 그는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친밀함을 느끼는 기회를 강렬하게 원하면서도, 마치, 그런 것을 통해 학생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빼앗을까 봐 조바심을 내는 것 같아."
사브리나는 천천히 진을 쳐다보면서 눈동자를 빛내며 얘기했다. 그리고 눈빛은 충분히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창문가로 들어오는 적당한 조도의 햇빛처럼 진을 향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네가 다른 인간을 관능적이라고 하고 있구나......... 내게 세상 누구보다도 관능적인 네가........'
"그래, 케언즈는 이미 이 세계의 거인이야, 거인은 대부분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면서 조금씩 보이는 인간적인 면만으로도 무의식 중에 호의를 이끌어내기 마련이지. 그렇지만, 그 거인의 가슴에 심장이 들어 있는지, 아니면, 가득히 기계만 들어차 있는 것인지는, 그냥 곁에서 본 것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사브리나는 질투심에 휩싸인 진의 눈을 다시 지그시 바라보았다.
"케언즈 교수에게는 없는 젊음을 갖고 있는 미래의 거인이 뭐 이렇게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있을까?" 사브리나의 눈과 말투는 질투심에 빠져 비틀거리는 진의 바닥까지 모두 훑어보는 것처럼 그를 관통해서 휘저어 들어갔다.
'케언즈는 나의 미래에도 여전히 거인 그 자체가 될 사람이야. 내가 거인이 되어도, 그의 성취를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이 시대에 아인슈타인이나 괴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물보다도 한참 높게 평가받는 인물을 누가 어떻게 따라잡는다는 거야? 사브리나.'
눈빛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진은 사브리나의 손을 끌어 잡아당겼다.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공원에 가자.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그 전처럼, 갑자기 날 끌어안거나 게놈지도 3차 개정 버전의 내용을 떠올리지 못한다고 키스하는 것은 싫어."
"아니, 이번엔, 그 이상의 일을 할 거야. 싫어할 수 없을 거야."
그는 사브리나의 기다란 손가락을 꼭 쥐어 끌어당김과 동시에 매끄럽고도 유연한 허리를 다른 팔로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에 낀 반지의 큐빅 부분을 누르며, 동시에 일루미네이션 공원을 의미하는 인식 키인 3.3.7 코드의 눈 움직임을 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