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조용한 응원, 글쓰기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글을 쓴다

by수풀림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처럼, 내 마음에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들이 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날들. 작은 실수 하나로 하루 전체를 망친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 세상이 나만 미워하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드는 날들. 남들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데 나는 제자리에 멈춰선 것 같아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들.

그런 날의 나는 한없이 침전한다. 바닥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빛도 잘 닿지 않는 곳에서 나는 웅크린 채 숨죽이고 있다. 그곳에서 오래도록, 축축히 젖어 무거워진 마음을 끌어안고 소리없이 울고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가만히 노트를 편다.

불안과 우울의 소용돌이 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펜을 잡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나도 작아져 없어질까봐, 본능적으로 나를 다시 살리기 위해 한 글자씩 써내려간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아프다, 억울하다, 화가 난다, 무섭다, 두렵다...'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못한 속마음들이 젖은 숨처럼 종이 위에 내려앉는다. 나를 집어삼킬 듯한 감정들은 단어와 문장이 되어 밖으로 흘러 나온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조금씩 쓰다 보면, 일렁이는 마음이 다시 고요해진다. 사납게 퍼붓던 소나기는 가랑비가 되고, 이슬비로 바뀌며, 어느새 빗소리는 잦아든다.


글쓰기는 내게 조용히 위로를 건넨다.

아프고 다친 내 마음을 알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보듬어준다. 내 마음을 다 쏟아낼 때까지, 한 글자도 빠짐없이 가만히 들어준다. 괜찮은 척하느라 외면했던 진짜 마음을 조용히 불러내어, 괜찮다고 말해준다. 못난 마음도, 부끄러운 마음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연약한 마음도 얼마든지 꺼내보라고 응원해준다. 나를 다그치지 않고, 섣불리 충고하지도 않고, 그저 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그 고요한 위로에 기대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던 나는 어느새 위로, 위로 떠오른다. 비로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쉰다. 나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


글쓰기는 나를 향한 응원이자 아낌없는 사랑이다.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날들에도, 글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더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흐트러진 마음 그대로, 울다 만 얼굴 그대로, 끝내 다 괜찮아지지 못한 나까지도 조용히 품어준다. 다만 스스로를 포기하지는 말라고, 나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넬 뿐이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세찬 비는 앞으로도 예보 없이 쏟아질테지만 그런 날이면 나는 또 가만히 노트를 펴고, 나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글은 그렇게 언제나, 나를 보듬어줄테니까. 괜찮다고 토닥여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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