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 라이프스타일

우붓 라이프스타일


발리 우붓(Ubud)의 리조트에서는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논과 숲을 바라보며 수영하고, 요가와 스파를 즐기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자연과 휴식, 웰니스를 결합한 리조트 문화만으로도 우붓이 세계적인 여행지가 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붓의 매력은 리조트 밖으로 나와 도시 문화를 탐구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걸, 걷다 보니 알게 됐다. 리조트에서 경험하는 자연과 휴양은 우붓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다운타운의 거리와 상점을 걷고, 주민들이 살아가는 골목과 마을로 들어가자 전혀 다른 우붓이 보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세계의 여행자와 크리에이터들이 매력을 느끼는 ‘우붓다운 삶’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우붓 라이프스타일의 복합성

우붓 라이프스타일을 짧은 여행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본 것도 아니고, 몇 번의 산바카라과 방문만으로 우붓 사람들의 삶을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붓이 다른 여행지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은 한 번의 방문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붓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어느 하나의 콘텐츠가 아니었다. 요가도, 웰니스도, 리조트도, 예술과 공예도 그 자체로는 우붓 전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러 생활방식이 한 공간에 겹쳐 있는 복합성이 우붓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이었다. 자연과 도시, 전통과 현재, 일상과 럭셔리가 어느 하나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자연과 도시의 결합이었다. 우붓은 논과 숲, 계곡 사이에서 마을과 상업이 성장한 곳이다. 자연은 도시 밖에 따로 존재하는 관광자원이 아니라 사람들이 먹고 쉬고 운동하고 일하는 일상의 배경처럼 느껴졌다. 자연생활과 도시적인 문화생활이 가까이 붙어 있다는 게 걸을수록 실감났다.


그다음 눈에 밟힌 건 전통과 현재의 중첩이었다. 전통공예와 종교, 시장과 오래된 관광상업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음식과 디자인, 패션과 예술이 계속 들어와 있었다. 새것이 옛것을 몰아내기보다 서로 다른 시대의 콘텐츠가 축적되는 방식으로 도시가 진화해 온 흔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다가온 인상은 일상과 럭셔리의 공존이었다. 우붓의 럭셔리는 지역의 일상과 완전히 단절된 별도의 세계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논과 숲, 발리 건축과 공예, 음식과 웰니스를 현대적인 서비스와 결합하고 있었고, 고급 리조트의 정문을 나서면 주민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골목이 바로 나타나는 것도 걸으며 자주 마주친 풍경이었다. 결합과 중첩, 공존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 복합성이 우붓 라이프스타일을 다른 관광도시와 구별하는 특징처럼 느껴졌다.


우붓 라이프스타일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이 라이프스타일은 실제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궁금해졌다. 우붓을 돌아보니 크게 리조트, 다운타운, 골목길과 마을이라는 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리조트다. 우붓 외곽의 논과 계곡, 숲에는 고급 호텔과 빌라,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자연경관과 발리 건축, 공예와 음식, 요가와 웰니스를 현대적인 숙박과 서비스에 결합하고 있었다. 최근 등장한 러스텝스(Rusteps)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공간도 크게 보면 자연과 음식, 휴식을 결합해 온 우붓의 럭셔리 문화를 현대적으로 확장한 사례로 읽혔다.



다음으로 발을 들인 곳은 우붓 센터로 불리는 다운타운이었다. 이번에 직접 걸어본 잘란 라야 우붓(Jalan Raya Ubud), 잘란 카젱(Jalan Kajeng), 잘란 몽키 포레스트(Jalan Monkey Forest), 잘란 하노만(Jalan Hanoman)에서는 서로 다른 시대의 서울 상권을 한 곳에 겹쳐 놓은 듯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전통공예품과 기념품, 보세의류와 생활잡화 등은 1990년대 이전 서울의 인사동·이태원·동대문을 연상시켰다. 그 사이에는 커피전문점과 베이커리, 독립서점, 갤러리, 편집숍, 인디 브랜드 등 2000년대 이후 홍대·성수동에서 익숙해진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후자가 전자를 대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왕궁과 사원, 아트마켓과 전통공예가 여전히 상권의 기반을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카페와 서점, 디자인숍과 로컬 브랜드가 그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통 직조와 천연염색을 현대적인 디자인과 리테일로 연결하는 스레즈 오브 라이프(Threads of Life) 같은 공간도 이 생태계의 일부였다. 특정한 한 거리가 아니라 우붓 센터 전체가 서로 다른 세대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진화한 듯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건 우붓 곳곳에 분포한 골목길과 마을이었다. 우붓의 리조트와 관광시설은 주민들의 생활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관광단지 안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리조트 정문을 나서면 주민들이 사는 집과 작은 가게, 사원과 논이 이어지는 골목과 마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고급 숙박시설과 주민의 생활공간이 담 하나,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곳도 있었다. 여행자의 공간과 주민의 일상이 놀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맞닿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 풍경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리조트 안의 화려한 시설과 바로 밖 주민들의 생활환경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가까운 거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골목과 마을을 계속 걷다 보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여행자의 공간과 주민의 생활세계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같은 동네 안에서 공존하는 것 자체는 우붓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장점일 수 있었다. 여행자는 관광객을 위해 연출된 공간만 소비하는 게 아니라 조금만 걸으면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마을과 골목을 만나게 된다. 격차의 문제와는 별개로, 여행과 일상이 서로의 존재를 지우지 않은 채 가까이 놓여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세 공간은 서로 다른 우붓을 보여줬다. 리조트에서는 자연과 럭셔리를 경험하고, 다운타운에서는 전통과 현재의 중첩을 만나며, 골목길과 마을에서는 여행과 일상의 공존을 경험했다. 이 세 공간을 함께 걸어봐야 우붓 라이프스타일의 전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축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이 풍경이 대체 언제부터 쌓여온 것인지 궁금해져 우붓의 역사를 잠깐 찾아봤다. 오늘날 우붓의 모습은 최근의 관광 붐이 만든 게 아니었다. 그 기원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당시 우붓 왕실은 외부 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독일 출신 발터 슈피스(Walter Spies), 네덜란드 출신 루돌프 보네(Rudolf Bonnet) 등이 현지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1930년대에는 피타 마하(Pita Maha)라는 예술가 조직이 만들어졌다. 발리의 전통예술과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표현방식이 만나면서 현대 발리 미술의 중요한 흐름이 형성됐다. 이 역사가 흥미로운 건 우붓이 일찍부터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지역성을 유지하는 방식을 익혀왔다는 점이다. 외국 예술가들이 들어왔지만 발리의 자연과 종교, 공예와 마을을 대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소재와 자원으로 삼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이후 관광이 성장하면서 같은 방식은 숙박과 음식, 공예와 건축, 웰니스로 확장됐다. 1970년대 이후에는 발리의 전통적인 공예기술과 현대 디자인을 결합한 존 하디(John Hardy) 같은 사업가와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 우붓은 외부인을 관광객으로만 받아들인 게 아니라 지역의 자원과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생산자로도 받아들인 셈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또 다른 층이 더해졌다. 커피와 베이커리, 패션과 디자인, 독립서점과 편집숍, 요가와 웰니스 등 세계의 크리에이터 상권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우붓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 역시 기존 도시를 대체하기보다 그 위에 덧붙여진 모양새였다.


이렇게 보니 우붓의 역사는 결국 교체가 아니라 축적의 역사였다. 1930년대의 예술가 마을이 사라지고 관광도시가 된 것도 아니고, 관광도시가 사라지고 크리에이터 타운이 된 것도 아니었다. 예술가 마을 위에 관광산업이 성장했고, 그 위에 럭셔리와 새로운 크리에이터 문화가 더해졌다. 오늘 우붓에서 서로 다른 시대가 동시에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독자적인 라이프스타일 도시를 만들려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의 도시들이 떠올랐다. 한국의 많은 도시도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싶어 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관광객과 청년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로운 관광시설을 짓고, 카페거리를 만들고, 축제와 팝업을 유치한다. 그런데 우붓을 걸으며 느낀 건, 독자적인 라이프스타일이 그렇게 단기간에 만들어지기는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존의 생활세계를 지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붓은 자연과 종교, 공예와 마을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도시와 관광단지를 만들지 않았다. 새로운 호텔과 상점, 레스토랑이 들어왔지만 기존의 자연과 마을, 생활세계 안에 자리를 잡았다.


동행한 친구에게 들은 발리의 건축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발리에서는 전통적으로 건물이 야자나무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해 왔다고 한다. 높은 곳을 신성한 영역으로 여기는 발리의 종교적·문화적 전통이 현대의 개발 방식과 도시 경관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 결과 우붓에서는 대규모 관광개발이 이루어졌음에도 고층 건물이 자연과 마을의 경관을 압도하지 않는다. 전통에 대한 존중이 오히려 오늘날 우붓의 매력적인 저층 도시 구조를 지켜낸 것이다.


우붓 센터에서 오래된 관광상업과 새로운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공존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기존 상권을 한꺼번에 철거하고 새로운 상권으로 교체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가게와 시장, 공예와 종교시설 사이로 새로운 카페와 서점, 디자인숍과 브랜드가 들어왔다.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드는 것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남겨두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사람과 콘텐츠가 섞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외부인을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우붓의 역사에서 외부인은 관광객만이 아니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 작가와 사업가로 들어와 지역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했다. 지역성은 외부인을 차단한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라, 외부의 사람과 아이디어를 지역의 자원과 연결해 자기 방식으로 소화할 때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관광과 주민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관광산업이 주민을 밀어내거나 일상을 침해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여행자의 공간과 주민의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관광객이 주민의 생활세계를 존중하면서 지역의 가게와 골목을 이용하고, 주민 역시 관광산업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보행환경과 생활공간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붓의 골목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매력은 어쩌면 이런 공존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라이프스타일은 시설 하나, 거리 하나를 만든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과 도시, 전통과 현재, 일상과 럭셔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층을 계속 쌓아가야 한다. 지우지 않고, 섞이게 하고, 시간을 들여 축적하는 것. 우붓에서 발견한 라이프스타일 도시의 원리는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리조트 안에서도 충분히 좋은 우붓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리조트를 나와 다운타운의 거리를 걷고, 다시 주민들이 살아가는 골목과 동네로 들어가 보니 우붓이 왜 다른지 알 것 같았다. 새로운 것이 들어와도 이전의 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여행과 일상이 만나며, 자연과 도시, 전통과 현재, 일상과 럭셔리가 오랜 시간 겹겹이 쌓여 계속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도시. 오늘 걸으며 마주한 우붓 라이프스타일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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