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은 패션타운으로 향하는 것일까?

연희동은 패션타운으로 향하는 것일까?


지난 주말 미국에서 온 딸이 쇼핑을 다녀왔다고 한다. 어디 갔냐고 물으니 연희동이라고 한다. 연희동이 이제 쇼핑이 가능한 동네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행자에게 골목상권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동네 문화를 즐기는 곳이다. 이 여행에서 바카라과 소품을 사는 쇼핑 활동도 포함된다. 하지만 패션이나 뷰티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상권이 아니다. 그렇다면 쇼핑 스팟이 늘어나는 연희동은 골목상권을 넘어 무엇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연희동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희동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평범한 주거지였던 연희동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감각적인 카페들이 진입한 2000년대 초반이다. 그 후 연희동 상권의 성격은 몇 단계로 진화했다. 확인된 단계는 카페거리, 라이프스타일 상권, 크리에이터 타운 세 단계다. 그리고 지금 네 번째 변화가 진행 중이다.


1단계 카페거리(2003년 이후): 다른 골목상권과 마찬가지로 연희동도 2000년대 중반 카페거리로 시작했다. 1975년 연희점을 개점한 사러가쇼핑센터와 1978년 개업한 피터팬 제과점이 동네의 기반을 잡았고, 2003년 제니스커피하우스가 홍대에서 이전하고, 2009년 온라인카지노 카페가 뱅센느가 연희동에 오픈하면서 초기 카페거리가 형성됐다. 이어 홍대의 대표적인 식문화 공간이었던 제니스카페가 2012년 연희동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기고, 2013년 매뉴팩트커피가 진입하면서 연희동 특유의 깊이 있는 1세대 카페 상권이 안착했다.


2단계 라이프스타일 상권(2013년 이후): 2010년대 들어 스페셜티 커피, 베이커리, 독립서점이 홍대에서 연희동으로 본격적으로 넘어오면서 동네 문화와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상권으로 진화했다. 앞서 자리 잡은 매뉴팩트커피와 함께 2014년 들어선 노아스로스팅이 연희동 스페셜티 커피의 중흥기를 열었고, 2017년 폴앤폴리나가 홍대에서 이전해 오며 베이커리 문화를 확산시켰으며, 같은 해인 2017년 홍대의 유어마인드가 합류하며 독립서점 문화를 정착시켰다.


3단계 크리에이터 타운(2018년 이후): 2010년대 후반부터는 상권의 성격이 한층 더 달라졌다. 2014년부터 활동을 본격화한 쿠움파트너스가 단독주택을 감각적인 상업공간으로 재생하는 흐름 속에서, 2013년부터 로컬 생태계를 구축해 온 어반플레이가 2018년 크리에이터 라운지인 연남장을 선보이며 크리에이터 상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후 어반플레이가 2023년 복합문화공간 파크먼트연희까지 완성하며 커뮤니티를 공고히 했고, 여기에 보틀팩토리(2018), 라이카시네마(2021), 연희정음(2025) 등의 복합문화공간들이 문화적 밀도를 높이면서 연희동은 창작자들이 모여드는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민주당은 연희동에 제2의 성수동을 약속하지만 연희동은 이미 성수동을 향해 가고 있다


전 과정에서 연희동의 노포와 앵커는 자리를 지켰다. 사러가쇼핑센터는 50년 넘게 동네의 중심을 잡고 있고, 피터팬제과점, 독일빵집, 연희칼국수는 여전히 줄을 선다. 연희동의 갤러리, 공방, 문화시설도 계속 확장했다. 단계마다 진입한 새로운 업종들도 대부분 떠나지 않고 축적됐다.


연희동의 밀도는 노포와 로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네 곳곳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들이 이 생태계의 밀도를 말해준다. 어반플레이가 2015년부터 매년 가을 여는 로컬 페스티벌 '연희걷다'는 소상공인과 크리에이터가 협업해 동네 전체를 축제 무대로 만든다. 2020년 시작된 연희아트페어는 올해로 7회를 맞았다. 대형 컨벤션 홀이 아닌 동네 갤러리들이 같은 기간 동시에 문을 여는 방식으로, 관람객은 연희동 골목을 걸으며 21개 전시 공간을 순례한다. 올해 봄에는 로컬 요가원과 문화 공간들을 거점으로 '연희요가위크'가 열렸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골목을 밝힌다. 연희동은 물건을 사는 동네이기 전에,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동네다.



크리에이터가 만들어낸 취향의 집적으로 연희동 상권이 또 한번 변화한다. 패션, 빈티지, 리빙, 뷰티, 소품 매장이 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리빙 편집숍 TTA, 2019년 빈티지 조명가게 빅슬립, 2020년 패션 편집숍 카키스, 2021년 뜨개질 소품점 바늘이야기, 2022년 가구 편집숍 잭슨카멜레온, 2022년 카드숍 포셋, 2023년 라이프스타일 실렉트숍 투라이프, 2025년 홍대에서 이전한 오츠빈티지, 2025년 테일러메이드 남성의류점 스테디스테이트, 2026년 패션 편집숍 에이랜드 등이 연희동에 진입하면서 목적 쇼핑이 가능한 동네가 됐다.


이 변화를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패션타운은 설득력 있는 네이밍이다. 파리의 마레 지구처럼 연희동이 독립 패션 브랜드가 모여있는 크리에이티브 패션 지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패션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면이 있다. 특히 대기업 브랜드가 집적된 패션타운에 익숙한 한국 독자에게는 디자인, 인디, 크리에이터가 주도하는 연희동의 성격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4단계의 이름은 연희동이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카페거리 위에 라이프스타일이, 라이프스타일 위에 크리에이터가, 크리에이터 위에 패션이 쌓였다. 연희동 스토리가 주는 교훈은 하나다. 연희동과 같이 건축환경과 접근성을 만족하는 원도심 상권은 근린상권에서 라이프스타일 상권을 거쳐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그리고 그 너머로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소멸지역 원도심이 활용할 수 있는 지역발전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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