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은 공급자 경제다

로컬은 공급자 경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 산업 생태계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과거와 다른 점은 성수동이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성수동 모델을 다른 자치구에 어떻게 이식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광주에서는 성수동 같은 상권을 30곳 조성하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지역 산업의 주체가 제조업이나 농업이 아니라 크리에이터와 로컬 비즈니스가 이끄는 문화·관광·리테일 산업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새로운 지역 산업의 모태가 되는 로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이를 육성할 수 있다. 로컬은 공급자가 주도하는 경제다. 지역에 로컬이 더 필요하다면, 공급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다. 로컬을 수요 중심으로 접근하면 정바카라은 엉뚱한 곳에 돈을 쓰게 된다.


로컬 비즈니스의 시작

로컬 비즈니스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시장분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소비자 수요 조사에서도 시작되지 않는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기로 결심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게스트하우스를 열거나, 좋아하는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거나, 오래된 건물을 고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로컬 현상의 출발점은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다.


공급자 경제로서의 로컬의 역사는 길다. 19세기 후반 윌리엄 모리스가 시작한 미술공예운동 이후, 공방·아티잔·로컬·크리에이터 생산은 일관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영역이었다. 산업 자본주의가 대량생산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규모가 아닌 정체성으로 물건을 만들었다. 수요를 먼저 확인하고 생산에 나서는 방식이 아니었다.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천천히 모여들었다. 그래서 수요가 항상 공급을 따라가지 못했고, 로컬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1990년대 문화 전환

1990년대 이후 이 공급자 경제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아티잔과 로컬에 대한 수요 자체가 늘어난 것이다. 미국에서는 힙스터 붐이 공장제 상품 대신 수제 맥주, 독립 커피숍, 로컬 레코드 가게를 선택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홍대·이태원·성수로 이어지는 골목상권 현상이 그 표출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공급자 경제의 작동 방식도 달라졌다. 프로세스 경제, 커뮤니티 경제, 크리에이터 경제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공식이 있다.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그 과정을 공유하며, 공감하는 커뮤니티를 먼저 구축하고, 그 커뮤니티에 판매하는 것이다. 로컬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로컬 브랜드의 성장 경로를 보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보한 팬덤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제품이나 공간이 완성되기 전부터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먼저 고객이 됐다. 로컬은 처음부터 공급자 경제였고, 소셜미디어는 그 구조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수요보다는 공급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지방 여행의 경험이 가장 잘 보여준다.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살거리가 없고, 즐길거리가 없다는 평가가 반복된다. 진정성 있는 로컬에 대한 수요는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그 수요를 채울 로컬 브랜드가 집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 사업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로컬은 집적되어야 임팩트가 생긴다. 한두 개의 좋은 가게가 있는 동네는 목적지가 되지 못한다.


로컬 상권의 두 가지 공통점

그렇다면 집적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골목상권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옥, 적산가옥, 단독주택, 창고처럼 작고 오래된 건축물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이런 건물들은 크리에이터가 낮은 비용으로 자신의 감각을 투영해 기획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형 상가나 신축 건물에서는 로컬 브랜드가 자리 잡기 어렵다. 임대료도 높고 공간의 규격도 표준화되어 있어 정체성을 담기가 어렵다.


건축마을은 단순한 경관 정비가 아니다. 크리에이터가 낮은 비용으로 개입하고, 자신의 감각을 입히며, 작은 브랜드를 실험할 수 있는 물리적 플랫폼이다. 결국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어떤 콘텐츠를 유치할 것인가 이전에, 어떤 건축환경을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집적의 두 번째 조건은 크리에이터의 지속적인 공급이다. 홍대 상권의 저력은 홍익대에서 나온다. 연희동의 독특한 분위기는 연세대와 무관하지 않고, 성수동에는 한양대가 있었다. 농촌 지역도 마찬가지다. 홍동마을은 풀무학교가, 제천은 간디학교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로컬 크리에이터를 꾸준히 배출해 왔다.


로컬 스쿨이 반드시 정규 학교일 필요는 없다. 이태원에는 대학이 없다. 대신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외국인 커뮤니티가 그 역할을 했다. 남해 상주면에는 귀농인 커뮤니티가, 지리산 자락 남원 산내면에는 실상사 귀농학교가 생태적 삶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로컬 크리에이터의 저수지 역할을 해왔다.


공통점은 하나다.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크리에이터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인재 풀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로컬 스쿨이 없는 거점 지역에서는 이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로컬 메이커스페이스가 필요하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작과 생산의 거점으로서, 예비 창업자를 발굴하고 초기 단계를 지원하는 보육 공간이다.


성수동을 만들겠다는 공약이 실현되려면, 먼저 성수동이 왜 성수동이 됐는지를 물어야 한다. 오래된 공장 건물이 있었고, 그 공간을 기획할 크리에이터들이 있었다. 건축자원과 크리에이터가 부족한 거점 상권에는 건축마을과 로컬 메이커스페이스를 공급하는 것이 성수동 모델이다.


로컬은 공급자 경제다. 적어도 지금 한국 지역에서 병목은 수요 부족이 아니라 공급 부족에 가깝다. 정부가 투자해야 할 곳은 할인권과 이벤트를 통한 수요 진작이 아니라, 건축환경과 크리에이터 공급 기반이다. 이것이 로컬 현상을 지역발전으로 연결하는 경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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