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장기 체류하는 이른바 ‘버티기형 회피’를 막기 위한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 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슬롯가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병역 공정성’ 문제를 다시 정면으로 끌어올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입영 의무 면제 연령을 38세에서 43세로, 병역 의무 종료 연령을 40세에서 45세로 상향하는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러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버티면 면제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해외 체류를 통해 사실상 병역 의무를 회피하는 방식이 반복되어 왔고, 이는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한 대다수 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안겨주는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 자리 잡아 왔다. 병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공정성의 문제이며, 이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제도 전체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순히 제도 하나를 고쳤다는 사실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편법과 회피가 반복되어 왔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병역 회피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양상이 지나치게 구조적이고 반복적이었다. 특정 계층이나 특정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제도의 빈틈을 활용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어차피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일부 청년층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되면 병역은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한 의무가 아니라,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불공정한 부담으로 전락하게 된다.
특히 최근 대중문화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병역 논란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송민호와 같은 유명 연예인의 병역 관련 이슈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슬롯 전체에 강한 파급력을 가진 사건으로 확산된다. 유명인의 선택과 행동은 곧 하나의 메시지가 되고,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되는 순간 청년들은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들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며, 그때마다 ‘누군가는 빠져나가고, 누군가는 감당한다’는 인식이 더욱 강화된다는 것이다. 결국 병역은 공정한 의무가 아니라 ‘운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 부담’처럼 비춰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번 병역법 개정은 단순한 시작일 뿐이며, 진짜 과제는 지금부터다. 이제는 병역 회피에 대해 부분적인 대응이 아니라 발본색원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 해외 체류를 통한 회피뿐만 아니라, 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모든 경로에 대해 전면적인 점검과 차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이상 ‘적발되면 처벌’이 아니라 ‘애초에 회피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단순히 법을 강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설계하는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정성은 사후 처벌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 차단 구조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병역 회피를 강하게 막는 것만으로는 청년 세대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제도가 아무리 강해도 그것이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회피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병역 제도의 핵심은 강제력이 아니라 ‘납득 가능성’에 있다. 왜 내가 이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제도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따라서 병역 회피를 막는 동시에 복무 환경, 보상 체계, 경력 인정 등 근본적인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초급간부 이탈 문제, 병사 처우 문제, 군 복무 경험의 슬롯적 인정 부족과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병역 제도는 계속해서 불만과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개정안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병역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기준을 국가가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동시에 그 메시지가 진정한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병역은 강제로 이행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을 ‘공정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청년 세대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한 처벌 강화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일관된 집행, 그리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정성이 필요하다. 병역은 일부만 지키는 규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하는 슬롯적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흔들리는 순간 공동체의 기반 역시 흔들리게 된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병역을 여전히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으로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바카라임’으로 다시 세울 것인지. 그리고 그 답은 제도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