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봄날 - 아침, 안녕!

보통날의 시선 70

by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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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열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잠이 덜 깬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 훅 달려든다. 시리게 느껴져 어깨를 흠칫한다. 봄이 문밖에 와 있으나, 실내는 서늘함이 감돈다. 문득 빠져나온 이부자리가 아쉽다. 그렇다고 이불 뒤척이며 뭉그적거리지는 않는다. 아침이 주는 기대감도 있으나, 습관이 붙은 일이다. 눈뜨면 이불 걷고 곧바로 몸을 일으켜 나온다.


우유가 담긴 컵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30초 타이머를 맞춘다. 이 정도는 데워야 미지근한 온도를 즐길 수 있다.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베란다로 간다. 식물들에 슬쩍 눈길을 보낸다. ‘부겐빌레아’ 핀 베란다가 핑크색 꽃으로 화들짝 생기롭다.


“안녕!”


아침에 만난 남편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별일 없이 잘 잤느냐, 잠자리는 편안했느냐, 간밤엔 불면 없이 잘 잤느냐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안녕’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아이들이나 누군가 가까운 이에게 안부 문자를 넣을 때도 ‘안녕’이란 말을 꼭 챙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부터 어른 누구나 할 것 없이 먼저 건네는 말, 이 말처럼 쉽고 편한 인사도 없다고 여긴 지 오래다. 상대로부터 건너오는 인사와 상관없이 남발한다. 그렇다고 대놓고 아무한테나 하는 것은 아니나, 내가 하는 인사의 처음에 안녕이 붙는다.


오래전 같은 아파트에 살던 아이가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것일까? 어릴 때는 간혹 하던 인사를 안 하고 그야말로 나를 보고 쌩까길래, 나는 ‘어라! 이 녀석 봐라?’라면서 내가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

“……·!”


만날 때마다 먼저 인사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대뜸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어쭈! 준이 인사 할 줄 아는구나.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인사하고 싶어서?”

“안녕히 가세요.”


남편을 향해 하는 아침 인사 ‘안녕’은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 좋은 상태 메시지와 다름없다. ‘안녕’은 서로의 하루를 위해 응원을 건네는 나만의 언어이다.


남편과 ‘부겐빌레아’ 꽃에 대해 몇 마디 나눈 후 식탁에 앉는다. 출근 준비하는 남편과 오늘 아침은 두부와 들깻가루, 아보카도 오일 한 방울 떨어뜨린 우유에, 구운 달걀, 파프리카 서너 조각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파프리카의 단맛에 놀라며 어제 먹은 오렌지보다 당도가 높다고 말한다. 생우유를 마시면 배앓이하곤 했는데 무언가 다른 식재료를 쓰면서 점차 우유 마시는 일이 괜찮아 아침 식사가 되었다. 과일의 당도 때문에 중간에 채소를 갈아 마시기도 한다.


주방 주위에 채소를 갖추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 채소가 주는 화려한 색깔과 그 각각의 모양을 보면 기분이 좋다. 신선한 채소를 바라보고 있으면 살맛이 난다. 에너지원이 거기에서 난다는 생각으로, 마트나 시장에 가면 당근이며, 버섯, 호박, 오이 등 제철 식재료를 사 놓고 무엇부터 먹을까 궁리하는 재미가 있다. 더러 많이 산 채소를 가까운 이에게 나누기도 한다. 호박 한 개, 파프리카, 당근을 선물처럼 건네는 행위에서 삶의 풍족을 얻는다.


점차 밥 짓는 일이 뜸하다. 싱크대 옆에 우두커니 앉은 밥솥의 안부가 궁금할 만큼 이번 주는 집에서 먹은 밥이 몇 끼나 될까 가늠한다. 요리하는 일이 즐거워 사람을 불러 먹곤 했는데, 이 일도 점차 줄고 있다. 외식문화가 활발해지면서 식당마다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나 붐비는지 그동안 나만 나오지 않았었나 싶게 놀라곤 한다.


아이들이 떠난 집은 심심하다. 꼭 필요한 공간만 쓰게 된다. 몇 군데 생활의 쓰임이 있는 공간이 일평생 내 삶의 무대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으로 반복하는 이 공간 안에서 우리는 긴 시간을 산다. 서재에 앉아, 거실 소파에 앉아, 혹은 주방에 서서 나는 늙어가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무미건조함에 색깔을 입히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모색하는 것인가. 아니면 삶의 변화를 위해 자기를 밖으로 끊임없이 내몰고 있는 것일까. “요즘 누가 집에 손님 초대해 밥 먹냐!”라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는 세태가 이제 낯설지 않다. 주방이 무료해졌다. 안녕하지 못하다.


대체로 하루 절반의 일을 아침에 다 하는 편이다. 밤에는 집중이 필요한 일을 못 한다. 되도록 새벽이거나 이른 아침, 오전 중에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후다닥 해야 하니까, 아침은 늘 별일 없이 ‘안녕’해야 한다.


아침 3분의 1을 썼다. 나머지 아침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침내 힘껏 두드린다.


“아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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