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락을 생략해 보았다

3년 전 <새해 연락을 생략해 보았다>에 이어

by편은지 피디

3년 전 주변 상사에게 새해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단 링크)

난생처음 상사에게 새해 문자를 생략해 보았다


전화도 아닌 문자를 생략했을 뿐인데 나에게는 꽤 큰 이벤트였나 보다.

그 정도로 나는 사람들 틈에서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의 끈을 놓고 싶지 않던 사람이었다.


적어도 저 글을 쓰며 앞으로 영혼 없는 연락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저 글을 쓸 당시 약 15명에게 연락을 먼저 받았다고 했는데

이 수는 더욱 급격히 줄어 이번엔 10명이 안 되는 이들에게 추석이라며 연락이 왔다.


그마저 대부분 자주 보는 진실된 관계라기보다 업무적 관계 혹은 매크로처럼 매년 정해진 문장을 보내는 이들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들이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나 또한 먼저 연락을 건네는 이는 더욱 줄어들었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게 되는 수준이다.


그중 잊지 않는 한 명은 입사하고 배정된 첫 사수선배다.

곧 퇴직하시는 최고참이자 대선배이다. 매년 잊지도 않고 뻐꾸기 시계처럼 정시에 또 오는 연락에 선배도 이제 나로 인해 명절이 온 것을 더 느끼시려나 하고 생각해 봤다.


굳이 엄청 고맙다는 표현을 하시지 않아도 매년 먼저 짧은 글을 보내드리는 것에 마음이 흐뭇하다.

이번에는 선배가 밥 한 끼를 먹자고 먼저 약속을 잡아주셨다.


연출하실 때 카리스마가 엄청나 대부분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하던 선배였는데,

그 안에 인간적인 모습이 더 느껴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13년이 지났기에 미화된 것도 없지 않다.

입사하자마자 친구 하나 없던 나에게 점심은 알아서 먹으라며 강제로(?) 독립심을 키워준 선배님이기도 하셨다.


그때는 당황스럽고 선배들과 화기애애하게 점심 먹으러 나가는 동기들이 부럽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거의 20년 이상 차이나는 후배를 매일 데리고 밥을 먹이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는 게 충분히 이해된다. 덕분에 나는 주변에 다른 선배들에게 쭈뼛쭈뼛 인사를 건네며 관계를 넓혀갈 수 있었다.


그때 먼저 인사를 해 예쁨을 받았던 선배와 함께 10여 년 후 <살림남>에서 CP와 메인피디로 만나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뭐든 하나를 잃으면 더 큰 하나, 그 이상을 얻는 법이다.


사실 오며 가며 볼일은 많지 않았지만 내년이면 아예 KBS에 선배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못내 서운하다.

물론 그런 표현을 하면,

"야 오버 좀 하지 마라. 너랑 나랑 언제부터 봤다 그러니."라고 하실 것 같지만

선배님이 회사에 안 계셔도 매년 설, 추석 인사를 꼭 챙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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