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Meta M, Beyond Human>을 보고 나서
산업혁명을 거치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의 원천이 점차 몸에서 머리로 옮겨갔다. 되돌아보면, 몸을 쓰는 일이 아닌 머리를 쓰는 일을 하길 바랐던 어머니의 바람은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나 역시 그 큰 물결 속에서 머리를 쓰는 일을 꽤 오래 해왔다. 하지만 이제 머리만 쓰는 일로는 인간이 더 이상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졌다.
AGI 시대를 앞둔 지금, 인간을 압도하는 지능을 지닌 AI의 출현은 인간 존재의 가치와 의미, 나아가 인간만의 고유성과 차별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날카롭고 서늘하게 던져온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이 지닌 ‘몸’, 그리고 ‘몸짓’과 ‘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소설집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를 출간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는 박해영 작가와 함께한 북토크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이 만약 무용수의 길이라면, 몸을 정교하게 단련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장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여니스트 김혜연 안무가와 KAIST 김대식 교수를 떠올렸다.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몸이 아닌, 몸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고유성에 일찌감치 주목하고 강연과 집필, 공연 기획과 무대를 이어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Meta M, Beyond Human'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보고 왔다. 김혜연과 김대식의 협업 속에서, 김 교수님의 키노트 스피치, 이다연 안무가님의 〈Re: Choreography 다시 쓰는 몸 2.0〉, 김영진 안무가님의 〈The stranger within 이방인〉 공연, 그리고 네 분이 함께한 오픈 인사이트 토크까지 이어지는 두 시간 반 동안 깊은 사유의 장에 머물렀다.
AI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관객의 참여, 그리고 그 선택을 이어받은 무용수들의 몸짓은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즉흥성이 지닌 매력을 선명하게 체감하게 했다. 관객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공연의 단초로 마련된 질문 세트는, 글을 쓰는 안무가인 이다연 님의 감각이 오롯이 돋보이는 결정체였다. 사전에 약속된 안무 콘셉트에 즉흥의 결이 더해진 세 무용수의 움직임은 흡사 소마틱 댄스 같아서, 나를 고요한 명상의 바다 한가운데로 이끌었다.
이어진 두 번째 공연에서 나는 넋을 놓고 무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무 의자 하나를 위태롭게 들고 나타난 김영진 안무가가 무대를 스캔하듯 저 끝에서 이 끝으로 걸어갈 때부터 숨 막히는 서스펜스에 사로잡혔다. 사람을 따라 하는 피지컬 AI, 더 정확히는 인간 몸의 궤적을 정교하게 모사하는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데칼코마니 같았다.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김영진, 구은혜 두 사람의 춤은 그 자체로 빼어나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낯섦과 서늘한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일상의 공간에 침투한 기술이 몸을 입었을 때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지, 모사와 역모사가 교차하는 흐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지, 존재의 심연을 파고드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될 것 같다.
네 명의 패널과 관객이 나눈 인사이트 토크는 밀도 높은 질문과 감상이 더해져 무대를 한층 풍성하게 채웠다. 좋은 무대는 결국 좋은 관객과 호흡할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공식 일정이 끝난 뒤 이어진 밍글링 자리에서도 오랜만에 마주한 반가운 얼굴들, 새롭게 인연을 맺은 분들과 나눈 대화가 따뜻했다. 역시 커뮤니티의 구심점다운 혜연 님이라는 생각이 절로 스쳤다.
‘No Rush’. 두 번째 공연 말미에 M극장을 가득 채운 이 말은, 첫 번째 공연에서 내가 골랐던 키워드 ‘흐르듯 자연스럽게’와 조용히 손을 맞잡는 듯했다. 빠른 기술 변화에 떠밀려 불안이 짙어지고 존재론적 물음에 잠식될 것만 같을 때, 지금 이 자리에 집중해 호흡을 감각하고,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선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괜찮다, 다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 그렇게 다시 내 몸을 온전히 움직여보는 일이야말로 손에 잡히는 가장 명쾌하고도 따뜻한 해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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