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외도하는 이유
사람들은 종종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끌리고, 보고 싶고, 섹스하고 싶으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상대 생각이 자꾸 나고, 함께 있으면 설레고, 떨어지면 허전하면 그게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정확히 어디서 올라온 것인지까지는 잘 보지 않는다. 감정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그 감정의 출처는 묻지 않는다.
출처를 물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욕망은 에너지다
욕망은 몸에서 올라오는 충동이고, 일종의 긴장이다. 배가 고프면 음식이 당기듯, 외로우면 누군가가 당기고, 인정받고 싶으면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당긴다. 이 에너지는 반드시 방향을 찾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익숙한 사람, 혹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붙는다.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욕망이 올라온 상태에서는 상대가 특별해 보인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매력들이 과장되어 보이고, 이 사람이라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함께 있으면 충만하고, 헤어지면 공허하다. 이 감각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욕망이 빠지면 감정도 함께 사라진다. 섹스를 하고 난 다음 날 아침, 혹은 몇 주가 지난 뒤, 그 사람이 예전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그때야 비로소 질문이 생긴다. 이게 정말 사랑이었나?
그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하나다.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결핍은 몸으로 표현된다.
마음이 비어 있을 때 사람은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그런데 그 빈자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외로운지, 인정받고 싶은 건지, 그냥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한 건지. 그걸 모른 채로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닿고 싶어진다. 섹스하고 싶어진다. 그 감각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부족할 때,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마취제가 된다. 상대가 나를 원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자신이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건 결핍이 잠깐 마취된 상태다. 상대를 원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주는 그 감각을 원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외로웠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이 쌓이면 몸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작은 접촉에도 강하게 반응하고, 그 반응을 특별한 감정으로 해석한다. 사실 몸이 외로움에 반응하고 있는 건데, 상대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결핍이 깊을수록 성욕과 감정적 욕구가 뒤섞인다. 몸이 원하는 건지, 마음이 원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그 뒤섞인 상태에서 잠자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섹스가 끝난 뒤 감정도 함께 식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원했던 게 이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섹스 이후에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볼 필요가 있다.
잠자리를 가진 직후에는 강한 감정이 올라온다. 상대에 대한 애착, 보호하고 싶은 마음, 특별한 연결감. 이것을 사랑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헤어지기 싫고, 계속 붙어 있고 싶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인 것 같은 느낌. 그 감정이 너무 따뜻하고 강렬해서 이게 사랑의 증거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 감정의 상당 부분은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작용이다. 섹스 이후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인데, 이것이 상대에 대한 유대감과 애착을 만들어낸다. 진화적으로는 짝을 붙잡아두기 위한 설계다. 몸이 만들어내는 감정이지, 상대가 특별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이 감정이 진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정을 기준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사실 섹스하기 전에는 그냥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섹스 이후에 갑자기 이 사람과 사귀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호르몬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도 식는다. 그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 보면 알 수 있다. 상대의 성격이 여전히 마음에 드는가.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한가. 섹스 없이도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은가. 이런 것들이 남아 있지 않다면, 처음 느꼈던 강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과 호르몬이 만들어낸 착각에 가깝다.
소위 바람둥이라 불리는 사람들, 혹은 여러 이성과 잠자리를 가져본 사람들은 이 지점을 빨리 배운다.
그들은 욕망과 감정을 섞지 않는다. 끌린다고 해서 마음을 주지 않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욕망이 얼마나 쉽게 올라오고,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이미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경험하면 신기하지만, 열 번 경험하면 패턴이 보인다. 올라오고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면,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욕망의 작동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단지 욕망이 만들어낸 착각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도 남는 감정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이 나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구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상처받는다. 욕망이 올라오면 잠자리로 들어가고, 감정이 식으면 상대를 탓한다. 왜 변했지. 사실 변한 것은 감정이 아니다. 해석이 변한 것이다. 욕망이 있을 때는 상대가 특별해 보였고, 욕망이 사라지자 평범해 보이는 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상대에게 상처받으면서도 계속 끌려다닐까. 싫다고 느끼면서도 연락을 기다리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붙잡는다. 심지어 섹스하고 나서 자괴감이 드는데도 또 연락한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결핍의 문제다.
상대가 주는 것이 고통이어도, 그 고통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관심과 인정, 그리고 섹스가 주는 일시적인 충만감이 결핍을 잠깐씩 채워주기 때문이다. 어릴 때 일관성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가끔씩 주는 관심에 더 강하게 매달리는 것과 같은 구조다. 불규칙한 보상이 오히려 더 강한 집착을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간헐적 강화라고 부른다.
항상 잘해주는 사람보다,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따뜻한 사람에게 더 강한 감정이 생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불안정함이 결핍을 자극하고, 결핍이 자극될수록 욕망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 강한 욕망을 깊은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이 구조를 모르면 평생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상처받고, 떠나고, 비슷한 사람에게 다시 끌리고, 또 상처받는다. 상대가 바뀌어도 패턴은 바뀌지 않는다. 결핍이 그 방향을 계속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욕망보다 느리다.
급하게 올라오지 않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강렬하지 않을 수 있다. 섹스하고 싶다는 충동보다 먼저 오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처음에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이 여전히 옆에 있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감정이 훨씬 사랑에 가깝다.
섹스가 없어도 함께 있고 싶은가. 욕망이 사라진 다음 날 아침에도 그 사람의 말이 듣고 싶은가. 상대의 가장 못난 모습을 봤을 때도 여전히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는가.
그것이 사랑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한 기준은 하나다. 지금의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무엇이 남는가.
욕망이 빠진 뒤에도 여전히 함께 있고 싶은가. 상대가 나의 결핍을 채워주지 않아도 그 사람이 좋은가. 섹스 없이도 옆에 있으면 편안한가.
그 질문에 천천히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관계는 선택이 된다.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 된다.
욕망은 우리를 움직이지만, 사랑은 우리를 머물게 한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