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거미 어젯밤 거미를 죽였다 예고 없이 찾아온 둥글고 커다란 몸통과 거인의 음모(陰毛) 같은 다리 그 시커먼 형체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다가 끝내 쳐버려 죽이고 만 것이다 언젠가 어느 해충들을 다가올 불안과 추락을 나만의 나쁨과 아픔을 잡아 삼켜줬을지 모를 그녀를 죽이고는 손을 한참을 떨고 떨다가 살갗에 진하게 밴 감각이 지워져 잊힐 리가 없다고 쭈그린 채 되뇌다 홀로 시간이 멎어 잠들 수도 없는 이곳에 굴러떨어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