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 원이 45억을 이긴다
지난 6월 23일, 방위사업청 주관 '범정부 드론·대드론 통합획득 협력 포럼'에 패널 토의자로 참여했습니다. 자문위원으로 참여 중인 방사청 사업단에서 초청해주셔서, 적당한(?) 규모의 행사인 줄 알았는데, 참석자만 300명에 가까운 큰 행사였습니다.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가 되었는데요. (하필 기념 사진 지정 위치가 센터 ㄷㄷㄷ) 패널 토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를 온라인카지노용으로 다시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얼마 전, 레고 랜드를 다녀와서 아들에게 제법 비싼 레고 드래곤 로봇을 사줬다. 우리 집 악동은 신이 나서 1주일을 붙잡고 만들더니, 결국 거대한 드래곤을 완성했다. 그런데 아이는 레고를 슬쩍 만지고 놀더니, 다시 종이 접기 삼매경에 빠졌다. 요즘 빠진 장르는 색종이 합체 로봇. 십만 원이 넘는 고가의 레고보다 저가의 색종이 종이 로봇을 더 좋아하는 아이.
아이의 아이러니한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문득, 요즘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전쟁이 떠올랐다. 거기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싼 쪽이 지고, 값싼 쪽이 이긴다. 다만 전쟁에서는 그게 웃을 일이 아니다.
숫자 하나를 보자. 4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만 원짜리 FPV 드론이 있다. FPV란 조종사가 1인칭 카메라 화면을 보며 직접 모는 드론을 말한다. 게임하듯 화면을 보며 날리는, 그 흔한 취미용 드론의 군용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 60만 원짜리가 45억 원짜리 러시아 탱크를 잡는다.
비율로 따지면 7천 5백 배다. 동전 한 닢으로 금고를 통째로 터는 셈이다. 4년 동안 탱크로도 못 끊었던 러시아의 보급로를, 지금 우크라이나는 드론 떼로 끊고 있다. 모스크바와 키이우의 밤하늘은 매일 드론으로 덮인다. 최근 한 달,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는 전쟁 들어 최고치를 찍었다. 이게 지금 드론 전쟁의 민낯이다.
여기서 누구나 떠올리는 결론이 있다. "아, 이제 싸고 작은 드론을 많이 만드는 쪽이 이기는구나." 절반은 맞다. 허나 진짜 중요한 절반이 빠졌다.
생각해보자. 60만 원짜리 드론이라고 해서 적이 가만히 있겠는가. 러시아는 전파를 교란한다. 이른바 재밍(jamming)이다. 드론과 조종사를 잇는 전파 신호를 마구 흩뜨려 놓으면, 드론은 길 잃은 새처럼 허공에서 떨어진다. 그러니 적의 재밍을 뚫고 표적에 그대로 꽂히느냐, 아니면 들판에 처박히느냐. 이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기체가 아니다. 플라스틱과 모터와 프로펠러, 즉 '껍데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차이를 만드는 건 그 안에 든 알고리즘이다. 재밍으로 신호가 끊겨도 카메라로 본 풍경만으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소프트웨어. 적의 차량을 보고 군용인지 민간인지 제 눈으로 구분하는 소프트웨어. 진짜 무기는 거기에 있다.
이걸 잔인할 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미국이 230만 달러를 들여 만든 미사일이 있다. 재밍에 버티라고 안테나를 무려 12개나 달았다. 그런데 이란이 만든 값싼 자폭 드론 '샤헤드'는, 중국 시장에서 파는 흔한 부품으로 안테나를 16개 달았다. 5만 배 싼 물건이, 정작 '재밍 면역력'에서는 비싼 미사일을 앞선다. 돈을 더 썼다고 더 똑똑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재밍이라는 방패가 단단해지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두 개의 창을 길러냈다.
하나는 광케이블 드론이다. 아예 가느다란 광섬유 줄을 풀며 날아간다. 전파를 안 쓰니 재밍이 통하지 않는다. 연을 날리듯 실로 이어진 드론이라니, 우습게 들리지만 전선에서는 이게 통한다. 약점은 줄이 끊기는 것인데, 러시아는 신형 코일로 그 끊김을 70퍼센트나 줄였다고 한다.
다른 하나가 더 무섭다. AI 자율 유도다. 신호가 끊겨도 스스로 표적을 찾아 꽂힌다. 우크라이나의 '호넷'이라는 드론은 군용 차량과 민간 차량을 제 스스로 구분한다고 한다. 사람이 일일이 조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두뇌가 기체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여기까지 오면 머리가 좀 서늘해진다. 표적을 고르는 일을 점점 기계에 맡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렇게 진단했다. 타격 임무의 80퍼센트에서, 무인 체계를 조율하는 소프트웨어가 보조 도구가 아니라 '전투 시스템 그 자체'라고. 드론은 손과 발일 뿐, 전쟁을 지휘하는 건 소프트웨어라는 말이다.
전선에서 올라오는 장면들을 보다 보면, 이게 2026년의 실화가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나뭇가지에 발톱으로 매달려 가만히 잠복하다가, 표적이 지나가는 순간 툭 떨어져 자폭하는 '발 달린 드론'이 등장했다. 매가 사냥하듯 말이다. 5달러짜리 알리익스프레스 모션 센서로 만든 자동 살상 신관도 있다. 사람이 3미터에서 12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알아서 격발한다. 누가 다가왔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압권은 이것이다. 탄두도 없이 그냥 몸으로 들이받는 '박치기' 요격 드론은 적 드론을 잘만 잡는데, 정작 비싼 탄두를 단 미사일은 그 드론을 못 잡았다. 그렇게 놓친 드론 한 대가 반파된 채로 모스크바의 한 쇼핑몰에 떨어졌다. 수억짜리 방패가 못 막은 것을, 몸뚱이 하나가 막아낸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알던 전쟁의 문법이 흔들린다. 비싼 무기가 강한 무기라는 상식. 좋은 기계를 많이 가진 쪽이 이긴다는 믿음. 그 상식의 발밑이 빠지고 있다.
다시 60만 원과 45억 원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보통 이 이야기를 "드론이 세상을 바꿨다"로 끝낸다. 허나 내가 보기에 진짜 문장은 따로 있다.
세상을 바꾼 건 드론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껍데기에 영혼을 불어넣은 소프트웨어다. 재밍을 뚫는 알고리즘, 표적을 가려보는 눈, 신호가 끊겨도 길을 찾는 판단. 전쟁의 무게중심이 강철에서 코드로 옮겨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껍데기를 참 잘 만드는 나라다. 자동차도, 배도, 반도체도.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갈 두뇌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우리 군의 명품 무기들은, 60만 원짜리 드론 떼가 몰려오는 시대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품고 있는가.
이 질문이 무거운 이유는, 답이 우리 후방의 안전과 곧장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려 한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라는 조금 불편한 질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