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한 세계를 바꿔놓은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내일
드디어 다섯 번째 바카라의 초고를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2월 말까지 보내드리기로 했으나, 몰려드는 일정에 딱 한 달이 딜레이 되었습니다. 이번 바카라은 AI 관련 추천 도서 12권을 골라 거기에 제 생각을 더한 바카라입니다. 단순한 바카라 추천이 아니라 AI 이야기도 함께 담았고, 원서를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게, 그리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도록 썼습니다. 제 바카라 두 권도 슬쩍 포함시켰습니다.
여기서 다룬 바카라은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입니다. 절대로 제 바카라 『인간 없는 전쟁』의 추천사를 써주신 분의 바카라이라서가 아니라, AI가 세계를 바꿔놓은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내일을 가장 현실감 있게 그려낸 바카라이기 때문입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2016년 3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죠.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여러분은 아직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봄,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가 하나의 바둑 대국에 열광했습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계 최강의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대결이었죠.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알파고의 4승 1패. 인류 최고의 바둑 기사가 기계에게 졌다는 사실에 전 세계가 술렁였습니다. 당시 뉴스를 보면서 어른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부모님께 한번 여쭤보세요. 아마 그날의 기억이 꽤 선명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작 중요한 건 그 대국의 승패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시작되었거든요.
AI가 바둑을 이겼다는 뉴스는 순식간에 퍼졌지만, 그 뒤에 바둑 세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둑 기사들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공부 방법은? 수입은? 꿈을 포기한 사람은 없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바카라이 있습니다. 바로 소설가 장강명이 쓴 <먼저 온 미래>입니다.
장강명 작가는 프로 바둑 기사 29명과 바둑 관계자 6명을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르포르타주, 그러니까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기록이에요. 왜 바둑이었을까요? 바둑은 AI가 가장 먼저, 가장 강렬하게 들이닥친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산업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바둑 세계에서는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카라 제목이 '먼저 온 미래'인 거예요. 바둑 기사들이 겪은 일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내일이 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원전과 기원후, 바둑계에 먼저 찾아온 미래
바둑전문기자 안성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바둑에는 기원전과 기원후가 있다." 여기서 '기원'은 예수 탄생 같은 역사적 기준이 아니라, 바둑 AI의 등장을 말합니다.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뜻이죠. 기원전·기원후라니,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들릴 수 있는데요. 실제로 바둑계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이게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바둑계는 2018년을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I 이전의 바둑은 어떤 세계였을까요? 기사들은 직감과 경험으로 바둑을 두었습니다. 어떤 수가 좋은지는 선배 기사들의 가르침과 자신의 감각에 의존했죠. '공동연구'라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실력이 비슷한 기사들이 모여서 함께 바둑을 두고 분석하는 건데, 이것이 실력 향상의 핵심 경로였어요. 누구와 공동연구를 하느냐가 곧 실력을 좌우하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엘리트 그룹에 끼지 못하면 성장의 기회도 제한적이었죠.
그런데 2018년, 바둑 AI 프로그램이 일반에 보급되면서 이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알파고 대국이 2016년이었으니, 불과 2년 만의 일이에요. AI는 모든 수에 대해 추천수를 제시하고, 이길 확률을 퍼센트로 알려주고, 형세판단까지 수치로 보여줍니다. 예전에는 "이 수가 좋은 것 같다"는 감각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이 수의 승률은 62.4%"라는 숫자의 영역이 된 거예요. 직감이 데이터로 대체된 셈이죠. 수천 년 동안 쌓아온 바둑의 지혜가, 프로그램 하나 앞에서 재정립되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공동연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AI 하나만 있으면 혼자서도 최고 수준의 분석이 가능해졌으니까요. 예전에는 유명 기사의 연구 모임에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성장의 갈림길이었는데, 이제는 노트북 하나면 세계 최강의 스승을 옆에 둔 셈이 되었습니다. 선배에게 배울 필요도, 엘리트 그룹에 들어갈 필요도 줄었죠. 바둑 세계의 도제식 문화가 단 몇 년 만에 무너진 겁니다.
이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대표적인 기사가 신진서 9단입니다. 한국 바둑의 간판이자 세계 최정상급 기사인 신진서는 AI와 자신의 기보를 비교하며 공부합니다. 대국이 끝나면 자신이 둔 수와 AI가 추천하는 수를 하나하나 대조해보면서 어디서 갈렸는지, 왜 갈렸는지를 분석하죠. 실제로 신진서의 AI 일치율, 그러니까 자기가 둔 수가 AI 추천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의 비율이 프로 기사들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신파고’입니다.
반면, AI에 적응하지 못한 기사들도 있습니다. "AI 공부 안 하면 한 판도 못 이긴다"는 말이 바둑계에서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었습니다. AI로 공부하지 않는 기사는 대국에서 포석부터 밀리기 시작하고, 결국 성적이 추락합니다. 일부 기사들은 이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둑을 떠나는 선택을 하기도 했죠. 수십 년간 갈고닦은 자신만의 바둑이 하루아침에 구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프로 기사의 세계에서도 AI를 도구로 받아들이느냐 마느냐가 생존의 기준이 된 거예요.
AI를 쓰는 사람 대 AI를 쓰지 않는 사람
<먼저 온 미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통찰이 있습니다. 이 바카라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데요. AI 시대의 경쟁은 'AI 대 인간'이 아니라'AI를 쓰는 사람 대 AI를 쓰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겁니다. 뉴스에서는 종종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프레임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바둑계에서 이건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기사들과 그렇지 않은 기사들 사이에 실력 격차가 벌어졌으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AI의 혜택이 모든 기사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 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 살펴보면 꽤 의미심장한 패턴이 보입니다.
먼저, AI 덕분에 오히려 실력이 크게 늘어난 기사들이 있습니다. 포석 감각이 약했던 기사, 바둑에 늦게 입문한 기사, 암기력이 좋은 기사, 그리고 엘리트 공동연구 그룹에 끼지 못했던 기사들이에요. 예전에는 이런 기사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석은 감각과 경험의 영역이었고, 늦게 시작하면 따라잡기 어려웠고, 공동연구에 못 끼면 성장에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AI가 이 모든 장벽을 허물어버렸습니다. 포석 감각이 부족해도 AI가 최적의 수를 알려주니까 보완이 가능해졌고, 늦게 입문해도 AI로 빠르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죠. 암기력이 좋은 기사들은 AI가 제시하는 수많은 변화도를 잘 외워서 실전에 활용했고, 공동연구 그룹에 못 낀 기사도 AI라는 최강의 파트너를 옆에 두게 된 셈이니 더 이상 불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AI가 기회의 문을 넓혀준 거예요.
반면, 손해를 본 쪽도 있습니다. 의외일 수 있는데, 바로 천재형 기사들이에요. 예전에는 뛰어난 직감과 독창적인 발상으로 상대를 압도하던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수를 던져서 판을 뒤집는 타입이죠. 그런데 AI 시대에는 그 우위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AI가 제시하는 수가 워낙 정확하다 보니, 독창적인 수를 두는 것보다 AI가 추천하는 정확한 수를 잘 따라가는 게 더 유리해진 거예요. 천재의 번뜩이는 한 수보다 AI와의 성실한 공부가 더 큰 무기가 된 셈이죠. 결과적으로 바둑계는 이전보다 공평해졌습니다. 허나 그 공평함은 누군가에게는 상실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바둑 기사라는 직업 자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흥미롭게도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AI가 아무리 바둑을 잘 둬도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 기사의 대국을 보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바둑 기사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예전에는 프로 기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절대적이었지만, 이제는 아마추어도 AI 분석 화면을 보면서 "저 수는 AI 추천수와 다른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수입에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정상급 기사들은 타격을 비교적 적게, 그리고 늦게 받았지만, 중하위권 기사들은 그 영향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 패턴은 바둑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음악 산업을 한번 볼까요? AI 작곡 도구가 등장하면서 정상급 아티스트는 여전히 팬과 수익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간층 뮤지션들은 AI가 만든 음악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법률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계약서를 분석하고 판례를 검색하면서, 신입 변호사들이 하던 리서치 업무의 상당 부분이 대체되고 있죠.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늦게, 적게 영향을 받지만, 중간층은 변화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습니다. 바둑은 이 현상을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분야인 겁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든, 이 패턴을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야든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서 자기 영역의 상위권에 서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어이자 최선의 준비입니다.
AI 시대, 탁월함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힘
<먼저 온 미래>에서 제가 가장 오래 곱씹은 대목은 '토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토템이란 어떤 공동체가 신성하게 여기는 상징을 뜻하는데, 장강명 작가는 기술이 발전하면 이전 세대가 신성하게 여기던 가치가 무너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세대가 신성하게 여기는 '창의성'이나 '고유성'이라는 가치가 있잖아요? "사람만이 창의적일 수 있다", "나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 이건 현재 우리의 토템입니다. 하지만 한 세대만 지나면, AI와 함께 자란 세대는 이 가치를 지금과 같은 무게로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과거 세대의 '수작업이 기계보다 낫다'는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바둑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과거에 바둑 팬들은 기사의 독창적인 수, 천재적인 직감에 열광했습니다. 그것이 바둑의 토템이었죠. 하지만 AI 시대가 되면서 완벽한 바둑은 더 이상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AI가 두는 바둑이 가장 정확하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까요. 완벽함은 이미 기계의 영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역설이 생겼습니다. 완벽함의 시대가 열리자, 오히려 사람들은 완벽한 바둑보다 이야기가 있는 바둑에 더 끌리기 시작한 겁니다. 여성 기사들의 인기가 올라가고, 시니어 리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완벽한 기보는 AI에게 맡기면 되니까, 사람들은 대국에서 인간적인 서사를 찾게 된 거예요. 젊은 여성 기사의 성장기, 은퇴를 앞둔 베테랑의 마지막 도전 같은 이야기 말이에요. 기술적 탁월함보다 인간적 이야기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한 거죠.
이건 바둑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이미 유튜브에서도 우리는 화질이나 편집 기술보다 이야기에 끌리잖아요? 카메라 한 대로 찍은 투박한 영상이 수억 원을 들인 콘텐츠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도, 거기에는 삶의 맥락이 없습니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과정. 그 서사는 기계가 만들 수 없는 거예요. 바둑계가 보여주는 메시지도 같은 맥락입니다. AI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경쟁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바카라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AI를 도구로 받아들이세요. 바둑 세계가 증명했듯이, AI를 거부한 사람과 받아들인 사람의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잘 쓰는 것'이에요. 어떤 분야든 기본기를 갖춘 사람이 AI라는 도구를 만났을 때 가장 큰 시너지를 냅니다. 신진서 9단이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이유는 AI를 무작정 따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둑의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AI가 알려주는 수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기 바둑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둘째,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세요. AI는 정확한 답을 내놓는 데는 탁월하지만, 왜 그 답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이 일을 통해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바둑 팬들이 완벽한 AI 바둑보다 인간 기사의 이야기에 열광하듯, 앞으로의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에 반응할 겁니다. AI를 활용하는 능력은 기본이 될 테고, 거기서 차별화를 만드는 건 자신만의 관점과 서사를 만드는 힘일 겁니다.
장강명 작가는 이 바카라에서 AI의 미래를 이렇게 전망합니다. AI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집어삼키고, 그 뒤에 올 무언가와 결합할 거라고요. 무서운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이전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카메라와 지도와 음악 플레이어와 지갑까지 집어삼킨 것처럼요. 다만 AI의 속도와 범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넓습니다.
바둑은 AI가 가장 먼저 도착한 세계였을 뿐입니다. 이 변화는 이제 모든 분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의료, 법률, 금융, 교육, 예술. 어디든 예외가 아닙니다. 바둑 기사들이 AI 보급 후 2~3년 만에 공부 방법, 경쟁 구도, 수입 구조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듯이, 여러분이 슬롯에 나갈 때쯤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을 수 있습니다.
바둑 기사들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미래를 맞았습니다. 2016년 알파고 대국이 벌어지고, 불과 2년 뒤인 2018년에 바둑 AI가 보급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죠. 채 준비할 틈도 없었습니다. 어떤 기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고요. 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이 바카라을 통해 먼저 온 미래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바둑판 위에서 벌어진 일들을 여러분의 미래에 대입해 보세요. 내가 꿈꾸는 분야에 AI가 들어오면 무엇이 바뀔까? 나는 AI를 활용하는 쪽에 설 것인가, 거부하는 쪽에 설 것인가? 그리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을 지금부터 품고 있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수(手)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