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사용한 전문가 프로그램, 혹은 B2B SaaS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더 나은 검색엔진이나 프롬프트 질의, 질의 후 결과를 정리하거나 형식을 맞춰주는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부가적인 편의성과 사용성을 붙인 프로덕트의 UX는 AI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AI를 활용한 프로덕트의 UX는 '램프의 지니'가 된다.
램프의 지니는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지만, 소원은 세 번만 빌 수 있다. 어떤 질문이든 대답해줘야 하는 AI처럼 지니 역시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줘야 한다.
하지만 AI에 할루시네이션이 있는 것처럼 지니도 소원을 제멋대로 이루어준다. 그래서 문제가 지니의 능력이 아니라 소원을 비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원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소원을 낭비하게 된다.
프롬프트 기반 B2B AI 서비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많은 AI 서비스에는 사용량 제한이나 유료 과금이 존재한다. 사용자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질문을 수정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지만, 그 과정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정작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기 전에 기회를 소진할 수 있다.
지니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AI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사용자는 질문하는 방법을 탐색하느라 정작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
지니는 소원을 들어주지만, 반드시 소원을 빈 사람이 기대한 방식으로 들어주지는 않는다. AI 역시 간단한 질문에 방대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사용자는 그 답변을 다시 해석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질문을 수정해야 한다.
결국 세 번째 소원을 빌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문제는 지니가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비는 사람이 자신의 진짜 요구를 발견하기까지 너무 많은 기회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분야에 비슷한 프롬프트 UI를 가진 서비스가 늘어난다면 어떨까? 사용자는 여러 지니를 찾아다니며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다가, 결국 가장 익숙하고 범용적인 ChatGPT, Claude, Gemini로 돌아갈 수 있다.
법률, 의료, 특허처럼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 체계를 갖춘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니라도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더 빠르고 편리하게 찾아주지 못한다면, 범용 AI보다 나은 제품 경험을 제공하기 어렵다.
디자인을 더 잘하거나, 경험 설계를 더 치밀하게 하는 노력은 출시와 매출이라는 목표에서 쉽게 제한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제작 환경에서 램프의 지니가 가진 악의는 '어쩔 수 없다'와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무심하고 게으른 형태로 반복된다.
램프의 지니가 소원을 악의적으로 이루어주는 이유는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 지니는 요정 같지만 실제로는 사막의 악령이고, 인간의 처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환경과 의도 등을 고려한 공감이 필요하다.
UX에서 다양한 지표와 정의를 제공하는 닐슨노먼 그룹에 따르면, 이 공감은 연민(Pity) → 동정(Sympathy) → 공감(Empathy) → 측은지심/컴패션(Compassion)의 4단계 스펙트럼으로 구분된다. UX에서 중요한 부분은 공감(Empathy)이며, 이 공감은 감성적인 위로가 아니라 디자이너나 기획자가 주관과 편견을 내려놓고, 타인의 관점, 생각, 감정, 동기,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화면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콘텍스트, 프로덕트, 태스크의 관계에서 UX 디자인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기보다는 횡단보도나 공중 화장실처럼 누구나 이해와 사용이 쉽게 만든다. 하지만 AI를 고려한 대부분의 서비스는 프롬프트에 집중하고, 검색과 출력에 집중한다.
입출금을 편리하게 만들었던 토스 이전의 은행도 입금과 출금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사용자를 덜 고려하고 자사의 입장을 더 생각했을 뿐이다. 카지노톡에 대체된 네이트온도 마찬가지였다.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은행과 토스 사이, 네이트온과 카지노톡 사이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서비스와 제품이 있었다.
사용자의 편의와 가치 대신에 특정 사용자를 목표로 '덜 설계된 형태'로 제공되는 제품의 사용자는 결국 공공 서비스나 더 큰 AI 서비스로 쉽게 돌아설 수 있다. 램프의 지니 이야기처럼 소원을 빌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로 결론지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누구나 램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제한된 소원을 일정기간 무료로 들어주는 플러그인과 제품이 이전보다 더 쉽게 출시되고 있다. 이미 출시된 제품을 AI로 다시 만드는 것도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AI 이전에는 브랜딩과 디자인 등이 베끼기 쉬운 요소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능을 포함 제품 전체를 카피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어도비 포토샵과 제품군을 AI로 복제하거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통째로 다시 다시 만들어 공개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처음에는 누구나 쉽게 제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있는 것도 복제하기 쉬운 기술이 등장했지만, 정작 소원을 비는 대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기술까지 알려주진 않았고, 지금의 세상은 소원을 들어준다고 외치는 램프들로 채워지고 있다.
램프를 만드는 기술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램프 속의 지니가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주진 않았다. 기술과 효율성, 트렌드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는 프로덕트에서 가장 중요한 사용자를 소외시켰다.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 소원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AI는 프로덕트 과정 전체의 효율성을 높였고, 개발과 디자인, 기획의 경계를 낮추었다. 그리고 디자이너에게 더 다양한 능력과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제품을 만드는지에 대한 해결바카라까지 제시하진 못했다.
제작 과정에서 개인의 능력이나 기여도는 작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커졌다.
AI는 프로덕트 제작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장벽과 반복 작업을 줄일 수 있다. 기존에는 충분한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조직에서만 가능했던 제작과 실험을 더 작은 팀에서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시스템보다 개인의 경험과 역량에만 의존했던 기업에서 확장된 디자이너의 역할은 부담으로 남았다.
하지만 AI 시대의 변화는 이미 고착화된 기업 간의 시스템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도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 분야에서 AI의 UI 생성 과정은 점점 더 개선되고 있고, 코드의 구성뿐 아니라 재사용 부분에서 AI의 결과물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제작의 문제가 해결될수록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효용을 느끼는 경험이다.
누구나 램프를 만들 수 있는 시대의 좋은 램프는 두 번째 소원을 요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