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경험, 나의 첫 강의를 마치며

한겨레교육 <덕질로 글쓰기> 1기 후기


한겨레교육에서 강의를 제안받았던 건 무려 작년 12월이었다. 담당자님으로부터 메일과 전화 연락을 받았고(내 인스타그램에 메일주소 잘못 기재되어 있던 걸 알아차려주셨던 담당자님.. 감사합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한다고 했다. 당연하지! 내가 그렇게나 많은 강의를 들었던 한겨레교육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해야만 했다.


그렇게 상반기를 강의하며 보내는 거 아니야? 하고 꿈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덕질로 글쓰기>라는 다소 뾰족한 강의 주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강사의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였을까, 모객이 잘 되지 않았다. 모객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담당자님한테 연락이 올 때마다 두근두근했다가 실망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봤자 온라인카지노와 인스타그램에 강의 공지를 올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수강생이 부족하여 강의가 몇 번이고 딜레이 되다가 끝내 취소되었을 때는 우울감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너무 유명하지 않아서, 내가 너무 초보여서, 그래서 수강생이 모이지 않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실 모객이라는 건 여러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고, 운과 하늘의 뜻이 맞아야 잘 되는 것이었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의 탓만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애 첫 강의를 모객 실패로 연이어 뒤로 미루게 된 당시의 나에게는 모든 게 내 탓으로 보였다. 4월에 두 번째로 강의를 오픈했을 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나는 무려 카드뉴스를 포토샵으로 한 땀 한 땀 직접 만들어 인스타그램 광고를 돌리기에 이른다. 심지어 내 돈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종적으로 내 강의를 들으러 오셨던 여섯 분 중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온 분은 한 분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광고비를 허공에 날린 사람이 되었다. 물론 광고를 돌리면서 많은 신규 팔로워를 얻긴 했으니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 끝에 7월에 모인 수강생 여섯 명은 강의 오픈하기에 부족한 숫자였지만, 한겨레교육 측과 협의한 끝에 적은 인원이어도 오픈하는 것으로 결정해 드디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강생이 적은데 강의를 오픈할지, 딜레이 할지 묻는 한겨레교육 측 연락에 꼭 좀 오픈해 달라고 말씀하셨던 수강생 분이 있었다고 들었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여하간 몇 분의 수강생과 강사(나)의 간절한 염원 덕분이었을까 7월에 강의는 무사히 오픈하게 된다. 그다음부터 5주간 우당탕탕 나의 첫 강의가 진행되었다.


사실 강의가 진행되는 7~8월간 다른 일은 거의 아무것도 못하고 오로지 강의에만 매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겐 강의기획서만 있었을 뿐, 제대로 된 강의자료(PPT)도 스크립트도 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가야 했다. 거기에 수강생 글쓰기와 피드백도 있는 강의였기에 수업 며칠 전에 들어오는 수강생 분들의 글에 대한 피드백도 다음 수업 전까지 성실히 적어두어야 했다. 월요일 수업이었기에 주말은 당연히 강의 준비에 올인하는 날들이 되었고, 그 외에 다른 날들에도 거의 강의 생각만을 했다. 디자인을 이렇게 해볼까? 이번 강의에서는 이런 내용을 추가해 볼까? 그런 생각들만 하며 5주를 보냈던 것 같다.


정말 정신없이 강의를 진행했던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름의 체계를 갖춘 강의 커리큘럼을 만들어냈던 것 같아 뿌듯했다. 1강에서는 덕질 연대기를 작성해 보며 덕질 글쓰기의 씨앗을 찾고, 2강에서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것의 중요성(장면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서 3강에서는 장면들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의미화)을 다루고, 4강에서는 에세이에서 갈등을 다루는 법에 대해 논의한다. 마지막 5강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덕질이 나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는지를 써본다. 이게 내 강의의 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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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강사였던 나는 첫 강의날 정말 말 그대로 덜덜 떨었다. 시작할 때 농담으로 '지금 이 건물에서 제일 떨고 있는 사람이 저일 거'라고 말했는데 그건 백 프로 진심이었다. 스크립트를 보다가 노트북 화면을 보다가 수강생 분들 얼굴을 봤다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어떻게든 진행되었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심지어 꽤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은 수강생 분들 덕분이었다(정말로!). 월요일 저녁, 글쓰기 강의를 듣기 위해 신촌까지 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대부분의 수강생 분들이 결석 없이 오셔서 강의실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내 강의를 들어주셨다. 강의에 자신이 없다가도, 수강생 분들이 내 강의를 열심히 듣고, 메모하고, 강의자료를 사진으로 찍고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았다. 내 강의가 의미가 있는 거야! 내 강의에서 도움을 받고 계신 거야! 그런 확신이 들면 정말 뿌듯했다.


주를 거듭하면서 수강생 한 분 한 분의 글에 익숙해지는 것도 재미 중의 하나였다. 이 분은 최애에 대해 말하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이 분은 글에 센스가 있네. 이 분은 이미 기승전결이 완벽한데?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이 힘들거나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 지레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수강생 분들의 글을 읽는 게 즐거웠다. 강의가 끝날 때쯤엔 진심으로 모든 분들이 글쓰기를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꼭 글을 쓰시라고 거듭 말씀드렸던 건 그래서였다.


물론 모든 강의가 수월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시간 조절을 잘못해서 30분 이상이 남아 버린 적도 있었다. 능숙한 강사였다면 여러 방법을 통해 그 시간을 때웠을 테지만, 초보 강사였던 나는 매우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고백했다. "오늘 시간이 남을 것 같아서 강의를 더 준비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이렇게나 남아 버렸어요..." 그 뒤로는 프리스타일로 질문도 받고 내 온라인카지노도 보여드리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무사히(?) 끝났지만 정말 식은땀이 줄줄 흘렀던 경험이었다. 다음부터는 강의가 일찍 끝나버릴 때를 대비해 보충 분량을 준비해 둬야겠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부침에도 불구하고, 강의가 진행되었던 5주 동안 정말로 정말로 재미있고 신났다. 무엇보다 내가 글쓰기 관련 일을 한다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재미없고 나에게 맞지 않는, 오로지 돈만 보고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그걸 위해 내가 노력한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수강생 분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기뻤다. 덕질이 단순한 취미 생활에서 그치지 않고 글쓰기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나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는 게 뿌듯했다. 수강생 한 분 한 분의 글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아서, 그 감각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날 때 끝까지 참여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짧은 편지를 써서 드렸다. 수강생 분들이 내 강의에 대한 기억을 좋게 가져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다섯 번의 강의를 거치며 내가 강사로서 조금은 성장했음을 느낀다. 경험치도 없었던 강사의 강의를 믿고 선택해 주셨던 소중한 수강생 분들 덕분에, 이제 나는 레벨 2로 진화한 강사가 되었다. 평생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제 나는 <덕질로 글쓰기> 2기 수강생 모집에 돌입했다. 덕질에서 나오는 글쓰기의 씨앗을 모아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로 발전시켜보고 싶으신 분들, 모두모두 9월에 시작하는 <덕질로 글쓰기> 2기 수업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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