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에스파 윈터가 들어왔다
도무송 우치와 프리쿠라 랜박*. 온통 낯선 말로 가득한 세상이 있다. 덕질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 자꾸만 내 일상이 된다. 그리고 오늘, 그 세상이 한 번 더 우리 집 현관 앞에 잔뜩 도착했다. 택배는 언제나 설렌다. 그렇지만 이걸로는 이번 기다림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부족하다. 이 박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래 후기를 잘 남겨주기로 하면 덤을 많이 얹어 준다고 했던가. 그 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받아 본 상자 안에는 약속했던 것과 약속하지 않았던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누군가 직접 만들었을 스티커와 포토카드, 인화 사진과 짧은 쪽지까지. '윈터(WINTER)가 제 최애였어요.' 이 한마디로 내 세상에 수수수-수많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2020년에 데뷔한 최애의 아이돌, 에스파(aespa)가 어느덧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라 불리는 7년 차가 되었다. 내가 에스파에 입덕한 시기는 2022년 버블을 시작했을 때쯤이라 데뷔 초창기의 굿즈는 가진 것이 많이 없었다. (그래도 벌써 1500일이 되었어요!) 그런데 꼭 구하기 힘든 것일수록 더 가지고 싶어진다. 또다시 중고 거래 어플을 열었다.
적게는 몇 천 원에서 많게는 몇 만 원까지. 그때보다 가격이 오른 것도 있고 떨어진 것도 더러 있었다. 스크롤을 죽죽 내리다 원하는 굿즈를 금방 발견했다. 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1군 아이돌 덕질이라 제법 흔해서 어떤 모양이든 찾아내기 꽤나 편리하다. 나보다 먼저 이 사랑을 시작했을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굿즈를 가졌다가 보내주는 걸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요즘 쿨거래는 채팅이 세 개 이상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한다.
일본 콘서트에 가야 구할 수 있는 포토카드, 가챠를 여러 번 돌려도 세트를 완성할 수 없던 키링, 한정판 앨범. 그리고 함께 따라온 것들. 꼼꼼한 포장만큼 꼼꼼한 후기를 남겼다. 마땅한 값을 치렀는데도 넘치게 받은 것 같다. 나도 덕질을 오래 해봤기 때문에 이 사랑에 쓴 품을 가늠할 수 있어서 그렇다. 내 몫이 된 사랑들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 가방에 넣고 사무실에도 가져다 두었다. 이제 이 아이들은 조금 더 내 일상이 될 테지.
남들이 보기엔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이라 부르며 모으는 게 오랜 버릇이자 콤플렉스다. 이번에는 누군가는 잠시 멈췄거나 끝낸 곳에서 사랑을 다시 시작했다. 이 사랑은 이상하게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 이미 가득 찬 것에 덤까지 더해지니 결국 넘쳐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칠 생각이 없나 보다. 어쩌나. 에스파의 다음 컴백 전에 받아야 할 택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 도무송: 원하는 모양으로 윤곽을 제형한 스티커
* 우치와: 아이돌 응원 부채(扇子)
* 프리쿠라: 스티커 사진.
* 랜박: 랜덤박스. 굿즈를 무작위로 담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