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왜 유튜브보다 더 임팩트있게 느껴지지 않을까?, 스포 有
《백룸》은 분명 잘 만든 영화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공간의 질감, 조명, 음향,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케인 픽셀즈가 유튜브에서 구축해 온 백룸의 이미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현해낸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너무나 충실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는 '구현' 그 자체에 머물러 버린다. 원작이 가진 기괴함과 불가해함을 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새롭게 확장하거나 변형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느낌이다.
원래 백룸이 무서웠던 이유는 단순히 어두운 공간이나 괴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현실의 규칙이 무너진 공간으로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와 방들, 설명되지 않는 구조, 인간이 만든 것 같지만 어딘가 어긋난 환경. 그 공간은 단순한 미로가 아니라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세계였다. 그런데 영화는 의외로 그 아득함보다는 "갇혀서 도망치는 이야기"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것도 공포의 한 방식이지만, 백룸 특유의 존재론적 공포와는 결이 다르다. 이해할 수 없는 무한 공간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라 익숙한 스릴러 구조 속에서의 생존 공포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을 보면서 오히려 영화 자체보다 매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백룸은 본래 유튜브라는 환경 속에서 소비될 때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다. 늦은 밤 알고리즘을 따라 우연히 발견한 정체불명의 영상, VHS처럼 열화된 화질,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기록물이라는 감각. 그것은 영화관 스크린 위에 걸렸을 때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은밀했다. 영화관에서 보는 백룸은 하나의 정식 스릴러 영화가 되지만, 유튜브에서의 백룸은 마치 인터넷 깊은 곳에서 발견한 금지된 기록처럼 느껴졌다. 결국 백룸은 콘텐츠인 동시에 매체 현상이었고, 이번 영화는 그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백룸의 공포는 이야기뿐 아니라 그것이 유통되는 방식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부분은 공간에 대한 해석이다. 영화는 백룸을 점차 개인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침전된 장소처럼 다룬다. 특정 인물의 경험과 상처가 공간을 형성하고 그 안에 남겨진다는 식의 접근이다. 이것이 영화로서는 이해하기 쉬운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백룸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 역시 희석된다. 원래의 백룸은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설명도 없는 공간이었다. 인간이 만든 세계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듯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단지 길을 잃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데 영화는 그 공간을 인간의 내면과 연결시키면서 결국 백룸을 인간의 이야기 아래로 끌어내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백룸 자체보다 인간의 트라우마가 더 중요해진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진짜로 갇히는 장소는 물리적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은 벽도 문도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고일 수 있다. 트라우마는 반복되고 기억은 증식하며 생각은 스스로를 속인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이 만든 미궁 속에서 길을 잃는다. 출구가 없는 복도보다 무서운 것은 끝없이 증식하는 자신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백룸은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은유로도 읽힌다. 제한된 공간보다 훨씬 넓고 훨씬 벗어나기 어려운 장소로서의 내면 말이다.
케인 픽셀즈의 연출 역시 비슷한 아쉬움을 남긴다. 유튜브 시절의 그는 훨씬 거칠고 자유로웠다. 영상 하나하나가 정말 누군가 발견한 기록물처럼 느껴졌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되면서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정돈된 느낌을 준다. 잘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너무 익숙하다. 오히려 더 과감하게, 더 불친절하게, 더 난폭하게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메리의 집으로 보이는 공간이 점점 더 깊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가구 배치와 조명, 구조가 서서히 뒤틀려 가는 구간이었다. 그 장면들에서는 비로소 현실의 논리가 무너지고, 백룸 특유의 불쾌한 꿈의 논리가 살아난다.
반면 영화의 시작부터 다소 김이 샜다. 연구원이 죽으며 시작하는 전형적인 오프닝,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주변 인물들, 예상 가능한 엔티티 연출들은 솔직히 새롭지 않았다. 누군가 영화를 처음 만든다고 했을 때 떠올릴 법한 공포 장면들의 조합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특정 인물이 끌려가며 죽는 장면이나 엔티티의 활용 방식은 지나치게 익숙했다. 백룸이라는 세계관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을 생각하면 훨씬 더 기괴하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백룸》은 나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다만 백룸이라는 현상을 영화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작이 가진 가장 독특한 감각 일부를 잃어버린 작품처럼 느껴진다. 백룸 세계관을 극장 스크린 위로 성공적으로 옮겨왔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영화사에 남을 만큼 강렬한 공포 영화인가, 혹은 백룸이라는 개념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킨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결국 내게 이 영화는 "백룸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사건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던 만큼, 만족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