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전환점도 궁금합니다.
나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세 번의 전환점은 무엇일까?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각각의 전환점 이후,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킨 첫 번째 사건은 9살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온 것도 아니고, 6학년 때 잠깐 중국 현지에 있는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는 그런 변화가 싫지 않았다. 적응력은 갑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었다. 외향적이기보다 내향적인 편에 속하는 나지만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엄청 잘 적응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보다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환경의 변화는 나에게 별 특별하지는 않았다.
정작 나를 크게 뒤흔든 사건은 대학생 때 일어났다. 나는 운동신경도 꽤 좋은 편이라 나의 체력이 좋다고 믿었었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밤샘 과제며 술자리며 빠지는 법이 없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해도 정신력으로 버텼고 자주 새벽 첫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다. 점심시간 없이 연속으로 수업 운이 나쁘게 잡힌 학기에는 초콜릿으로 때우면서 끼니도 잘 챙겨 먹지 못했었다. 잠도 불규칙하고 운동도 전혀 하지 않고 청춘의 몸뚱아리만 믿은 나는 어느 날 크게 아팠다. 어디가 아팠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하필 시험기간이었던 1주일간 학교를 아예 못 나갔고 제발 아픈 것만 낫게 해달라고 울며 빌었던 것만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는 지옥 같은 1주일을 보냈다. 근데 그보다 더 지옥 같았던 것은 그 1주일간 밀린 과제와 못 치룬 시험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엄청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휴학을 할까도 고민을 했었다.
다행히도 교수님께서 부담을 내려놓으라고 배려해주셨고 휴학은 안 했지만 그 1주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큰 전환점이었다.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내가 건강 타령을 하는 것도 이 전환점이 계기였다. 나는 30대지만 60~70대가 느끼는 두려움이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이해가 된다. 내가 아파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사실 20대에 일찍 알게 된 것을 감사한다. 잠과 음식, 정신건강의 소중함,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운동까지. 나는 70대 노인이 30대의 몸으로 환생한 것처럼 지금의 건강에 감사하고 또 좋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내가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제약을 두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가 나의 진로를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완전한 자유가 나를 오히려 옭아맸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둔 게 오히려 독이었다. 선택지가 너무 넓어서 하나로 좁히지도 못하고 내가 대체 뭘 하고 싶은지도 길을 잃을 정도로 헤매게 되었다. 그러다가 슬롯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선택을 내 삶에서 제외시켜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경력이 단절된다는 건 피할 수 없겠다는 걸 처음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육아한다고 '경력이 단절'된다는 말자체에도 거부감이 있다. 나는 여전히 삶 전반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고 육아를 통해 슬롯적인 고민을 처음 하게 되었고 내 생각과 경험의 폭도 넓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면 내가 원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경제활동에 대한 생각이 정말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돈이 들어오는 경제적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루에 9 to 6로 한 공간에서 묶여서 하는 경제활동이 아닌 다른 방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나에게 엄청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글쓰기가 어떻게 돈이 되느냐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이 글쓰기는 영어로 글을 써서 세계무대로 파이를 키우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그림 역시 이미지가 갖는 힘은 언어를 초월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자유는 내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육아라는 선택지가 나에게 나아갈 길을 더 명확히 제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육아를 하면서 틈틈이 바카라도 읽고 글도 쓰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을 달랜다면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외로웠다. 나와 함께 성장을 할 영감을 주는 동료들이 고팠다. 사실 씽큐베이션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연결을 원하고 있는 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충격을 안겨준 멘토의 존재가 컸고 그들 속에 속해있고 싶었다. 씽큐베이션을 시작하고 나서는 바카라 읽고 서평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걸 다 해내는 것만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다가 끝나갈 즈음이 되니 불안해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 모든 게 신기루같이 느껴질 것이고 나에게는 좋은 사람들과 바카라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는 추억만이 남을 거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그러다가 언어 공부 및 습관 모임을 만들었다. 올해 7월부터 4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정말 제대로 쉰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 쉼 없음이 기약 없고 지치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게 보장이 되는 느낌이라 꽤 할만한 거다. 내가 진작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그전까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하던 게 무안해졌다. 난 열심히 산 적이 없었다. 그저 힘들어하기만 했던 거다. 내 한계를 너무 단정 지었고 겁먹었다. 이젠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의 힘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만이 나에게 남았다.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이 순간이 참 소중하기도 하고 현실같지 않게 묘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