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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지는 시간도 공정이다

by도르가

20화 - 굳어지는 시간도 공정이다.

어제 쓴 글 때문인지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오래 눌러두었던 일을 글로 꺼내면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운이 빠졌다. 마음속에 엉켜 있던 가지를 잘라냈으니 가벼울 거라 생각했지만, 잘린 가지에는 아지 생체기가 남아 아물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오늘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지난 한 주간 못 잔 늦잠도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다. 엊그제 저녁엔 안산에서 하는 KBS 열린 음악회 녹화가 있어서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를 생각하긴 했지만 장시간 앉아서 음악회를 본다는 것에 좀 더 두꺼운 옷을 입었어야 했는데 살짝 감기 기운도 있었다. 마지막 타임 불꽃 축제를 보고 연신 감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어제의 감정과 감기 기운이 하나가 되어 머릿속은 무기력으로 가려고 나의 감정을 자꾸 무겁게 했다.

이러다가 무기력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것 같았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차에 올랐다. 멀리 갈 것 없이 집 앞 카페로 향했다. 기분을 전환하려면 몸을 옮겨놔야 했다.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쓰다. 시럽 한 스푼을 넣었는데도 쓴맛이 남았다. 마음이 쓴 날에는 단맛도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보다.

바카라 두 권을 가지고 나왔다. 장동혁의 <할 말이 감정이 되지 않게> 와 세네카의 글을 하와이 대저택이 편역한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 두 권의 바카라은 오늘 나에게 제목으로 말을 걸었다. 할 말이 감정이 되어 버린 어제, 그 마음을 수습하느라 오늘까지 빼앗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가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날은 며칠이나 되겠는가?라는 문장 앞에 가만히 머물러 생각했다. 우리는 수많은 날 가운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머문 날이 며칠이었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고 감정을 살피며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시간은 많았다. 여러 사람의 시간 속에는 자주 들어가 있었지만, 정작 내 시간 안에는 얼마나 오래 머물며 살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우리는 나의 24시간을 아무에게나 퍼준다. 갚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아닐까. 시간의 소중함을 너무 가볍게 여기며 살아온 젊은 날도 있다. 하루에 스물네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고 내일이면 다시 생기는 것이라는 당연함 속에 살았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그렇게 쉰 여덟 해를 지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공사에 쓰고 남은 자재는 창고에 보관했다가 다음 현장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남은 수량을 확인하고 부족한 것은 새로 주문하면 된다. 그러나 오늘 사용하지 않은 시간은 내일 다시 꺼내 쓸 수 없다. 남겨둔 두 시간이 내일의 스물네 시간에 더해지는 일도 없다. '인생의 킵'이라는 것이 시간에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감정을 처리할 시간도 따로 보관할 수 없다. 오늘 미뤄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다음 날의 시간 속에 은근슬쩍 묻어 올라탄다. 무임승차를 나도 모르게 허락했던 것이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은 그렇게 켜켜이 쌓여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무임승차를 하며 감정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공사 계획서를 만든다. 필요한 자재와 인력을 확인하고 장비와 작업 순서를 정한다. 들어갈 비용도 미리 계산한다. 무엇을 어제 투입할지 정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로 사람과 장비가 뒤엉키고 공정이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에 들어갈 시간과 비용은 그렇게 꼼꼼히 계산하면서도 나의 24시간은 별다른 확인 없이 시작할 때가 많았다. 나의 일보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시간을 넉넉히 내어주면서 내 마음을 살피는 일은 자주 뒤로 미뤘다. 상대는 내 앞에서 없는데 그 사람의 말은 내 생각 속에 들어와 오늘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본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바카라을 읽으며 고전 속에 남은 말과 지혜를 만 뒤부터 내 시간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나의 시간도 함부로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이 나이에....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후회라는 녀석에게 주고 싶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고 있다. 최근에는 나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을 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간식을 준비해서 가고 있고, 북 카페라든지, 예전에 다녀온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공사에는 "양생"이라는 과정이 있다. 콘크리트를 타설 한 뒤 필요한 강도를 얻을 때까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충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는 작업은 멈췄지만 콘크리트 안에서는 굳어지는 과정이 계속된다. 충분히 굳기도 전에 다음 구조물을 올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다음날 곧바로 괜찮아질 필요는 없다. 아직 굳지 않은 자리에 이해와 용서라는 무거운 구조물을 서둘러 올리지 말자. 다만 양생은 방치와 다르다. 침대에 누워 같은 생각만 반복한 시간은 내게 쉼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주문하고 바카라 두 권을 꺼내 놓았다. 해결된 것은 없지만 무기력 속에 나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오늘 커피는 여전히 썼다. 그래서 우유를 조금 더 넣었더니 조금 나아졌다. 오늘도 내 인생의 공사현장에는 "양생"이 시작되었다. 나를 보호하는 시간을 오늘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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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사 중인 삶의 구조.png
미완의 계단에 흐르는 시간-3.png
건너지 못한 오늘의 마지막 타일-5.png
AI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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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길,천천히 그 길을 오늘도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봄편지 아빠에게 드립니다. *나는 온라인카지노 작가가 되었다. *엄마가 딸에게 쓰는 마음여행 / 3권의 전자바카라 출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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