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드라마] 2606 누룩, 累Look
'네가 좋아하던 것들은 그대로 두었어. 가져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는 공간이었지만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을 꼭 넣고 싶었다. 가장자리에 작은 수도꼭지와 개수대가 움푹하니 간단한 과일도 씻고 따뜻한 차나 음식을 같이 만들어 마주 보며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았다. 채서는 식탁에 맞춰 산 키가 큰 바체어에 앉아 작은 메모를 적어 냉장고 문에 붙였다.
'오늘부터 3일, 차분히 잘 정리하기 바라. 3일 후부터는 네가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잔인한 말이었다. 채서의 단호함이 떨리는 손을 따라 글씨에 꾹꾹 새겨졌다.
'너를 다 가지고 싶어.'
오래된 바카라을 수선하고 원본에 가깝게 제본하는 일을 하는 단주를 향해 채서가 먼저 던진 말이었다. 단주가 영국 어느 대학원에서 북아트를 전공하고 한국에 들어와 고문서나 낡은 바카라을 예술적으로 제본하는 공방을 운영한 지 십 년쯤 되었을 때였다.
1층에 위치한 그의 오래된 공방을 지나다니며 항상 뭔가에 집중하며 허리를 구부리고 마네킨처럼 꼼짝하지 않는 단주를 보면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한 자세로 저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자세히 보면 그의 눈동자와 손가락들이 미세하고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멈춤 같은, 어쩌면 평온으로 안주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공기에 빠졌는지도 몰랐다. 단주의 공방 건물 2층에 채서의 작업실이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꾸준히 전시를 하기 위해 두어 곳의 대학 강사를 하며 살고 있었다.
예술하는 사람에겐 거기까진 필요 없다는 박사를 마치고 졸업하면서 앞날이 환한 신예 작가라는 찬사 속에 작업실을 열고 그림에만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세간의 관심은 바람에 촛불 꺼지듯 급속으로 사라졌지만 화선지 앞에서만은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 여백 앞에서는 좌절이라는 단어보다 뜨거워지는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 때 간간이 팔리는 그림에 작은 자존심이 걸리곤 했고 가끔은 대작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 몇 곳에서 강의를 하며 그나마 꽤 큰 삼십여 평의 작업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채서의 작업실보다 몇 년은 더 앞서 들어온 제본 공방에 관심이 간 건 매일 다른 구석에서 꼼짝 않고 집중하는 단주의 모습 때문이었다. 채서가 흰색 종이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모습과 겹쳐지곤 해서 이상한 동지감이 들었다.
'저, 카모마일티 좋아하세요?'
단주가 먼저였다. 매일 흘긋거리며 지나다니던 채서를 그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단주가 차를 만들며 자기 이름이 흔치 않은데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며 묻지도 않은 설명을 했다. 단주端珠, 끝에 있는 구슬이라는 의미라며 일은 그 끝에서 잘 마무리하고 사람에게는 끝사람이 되라는 뜻이라 했다.
슬롯성이 없는 채서가 유일하게 만나 웃고 대화하는 사람이 단주가 되었고 단주는 채서가 무엇을 하든 받아주었다. 한 개 층을 사이에 두고 매일 만나는 사이였지만 채서는 그 층이 점점 얇아져 없어지거나 투명해져서 아래층에서 일하는 단주의 모든 시간을 따라다니고 싶었다. 그때 단주에게 한 말이었다. 그를 다 가지고 싶다고.
채서가 사용하던 작업실 가운데에 있던 더블침대를 한쪽으로 붙이고 기역자 싱크를 놓자고 한 건 단주였다. 효율과 동선을 치밀하게 따지며 기역자를 주장하던 단주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채서의 아일랜드 식탁에 대한 기대와 흥분은 그런 낯섦조차 서로의 관계 속에 아름답게 스며들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단주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달걀을 곱게 풀어 고르곤졸라 치즈를 넉넉히 넣어 굽고 꿀과 요거트를 얹은 빛나는 노랑의 오믈렛은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 달콤하게 입안을 휘도는 꿀의 부드러움이 단주를 통해 채서에게 건너왔다.
싱싱한 딸기가 나오는 철에는 단주는 꼭지 딴 딸기를 씻어 냉동실에 넣어 두곤 했다. 생크림과 연유를 넣어 갈아 과육 식감이 풍성한 딸기를 살짝 녹였다가 썰어 커다란 스텐 볼 안에 천천히 저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면 채서는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홍홍홍 기분 좋게 춤추듯 작업실을 돌며 가르랑거렸다. 단주가 항상 채서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몇 개월이 지나도록 채서가 음식을 하거나 심지어 설거지조차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단주는 항상 채서 앞에서 행복해했고 채서도 행복한 단주 앞에서 기뻤다. 단지 단주의 뒷모습에 그 행복과 기쁨을 새겨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채서가 뭔가 단주를 위해 만들어 주겠다고 해도 단주는 한사코 자기 일이라며 주방을 내주지 않았다. 채서가 고작 하는 건 아일랜드 식탁 수도를 쫄쫄 틀어 그녀가 좋아하는 레몬을 씻어 얇게 저미는 일이었다. 채서의 접시에는 언제나 서너 개의 얇은 반달 모양의 레몬 슬라이스가 있었다.
행복에 겨웠던지 기쁨에 따라온 흥분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던지 기역자 싱크 앞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단주를 보며 말도 안 되는 외로움이 차오기 시작했다. 백허그를 하면 단주는 다정히 돌아서 꾹 등을 다독이며 뭐라고 작게 속삭였다. 채서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어도 사랑한다거나 조금만 기다리면 맛나게 행복하게 해 주겠다 말했으려니 생각했다. 채서가 다 가지고 싶은 단주를 마주 볼 수 없는 시간이 쓸쓸했다.
단주가 1층으로 바카라 작업을 하러 내려가면 채서도 그녀의 종이 앞에 서서 가슴속에서 꺼내고 싶은 이야기를 지었다. 그러다가 단주의 기역자 싱크로 조용히 다가가 단주가 매일 만지고 씻고 닦는 커다란 차이나 도자기 접시와 반짝이며 면 천위에 다소곳한 수저와 포크 나이프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식기 수저 세트에 샘을 내다니, 사다가 깨끗이 다듬어 잘라둔 브로콜리나 양념에 절인 스테이크용 연어가 부러울 수 있다니 채서는 점점 소외감으로 뒤척이는 날이 많아졌다. 단주의 따뜻한 걱정에도 채서는 점차 잠을 잃어갔고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단주의 손길이 닿은 것들을 볼 때마다 야릇한 분노가 찼다.
작품에 대한 희망보다 단주가 주방에 서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단주에게 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네가 만지는 접시가 미워, 네가 닦는 나이프에게 샘이 난다고, 브로콜리도 만지지 마.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기역자로 꺾인 주방의 단주가 옆걸음으로 움직이며 채서에게 허락하는 게 고작 뒷모습이나 순식간에 지나가는 옆모습이라는 것이 너무 서럽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냐는 말이다. 점점 현실이 왜곡되고 단주도 왜곡되고 채서는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 같았다.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왜.
단주가 하는 모든 것들은 채서를 위한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지만 태어나 느껴보지 못한 이상하고 미칠 것 같은 질투가 채서를 삼키고 있었다.
단주를 말려 죽일 것만 같았다. 채서의 텅 빈 눈에 단주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주칠 때마다 안아주는 것 토닥여 주는 것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채서는 더 이상 단주를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절실함에 허겁지겁 끝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네가 있어서 내가 아파. 네가 없어도 잘 살아보려고. 그래 그러려고. 영원히 가지는 마, 그런데 지금은 네가 떠나야 해.
그렇게 채서의 작업실의 기역자 주방에서 단주를 밀어내고 있었다. 살아야 해서. 단 3일의 말미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채서는 믿었다. 바보처럼. 단주가 아무 말 없이 그가 쓰던 나이프와 도마를 가져가고 하얀 도자기 접시를 가져가고 야채를 다듬어 담아두던 유리그릇들을 가져가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원래 채서는 혼자였으니까.
냉장고의 메모지가 사라진 그날 이후 단주는 그 주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가득했던 그 모든 것들이 기역자 주방 안에 그대로였다. 채서를 아프게 했던 그의 뒷모습과 얼핏 얼핏 보여주던 희미한 웃음기의 옆모습도 볼 수 없었고, 그의 1층 공방에서도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한 달 넘게 작업실에 박혀 그림을 그리면서도 주방 싱크 위 그 어떤 물건에도 채서는 손대지 않았다. 단주가 스쳤던 곳마다 채서의 허망한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 그녀를 향해 낮게 곡을 하는 것 같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오래 조용하던 건물의 1층과 2층이 한 사람의 분열적인 예민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단주가 사라진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1층에 왔다 가더니 문에 커다랗게 임대한다는 빨간 글씨가 붙었다. 경찰을 비롯해 단주의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2층에 올라와 채서에게 몇몇 질문을 했지만 그들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타인들의 눈에는 가깝게 차를 나누며 지내는 이웃정도로 보였을 테니까. 단주에게 그녀가 저지른 비현실을 시시콜콜 말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했다. 한대도 뭐라 할 수 있었을까.
오랫동안 지나치며 기웃거렸던 단주의 1층이 비워지던 날 채서는 하루 종일 단주의 숨결이 떠나는 흔적을 따라가며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단주의 손길이 가득한 종이 재단기와 기다란 원목 서랍장이 실려 나갈 때 채서는 그녀가 곱게 누운 관이 화장장으로 보내지는 것 같은 그녀의 유리된 영혼을 마주했다. 일 년 넘게 단주와 보냈던 2층의 시간들이 먼지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채서는 아버지의 눈빛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주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표정도 어떤 감정도 느껴보지 못했다. 채서를 낳으며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 어머니의 죽음이 채서 때문이라는 원망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말없이 의무를 다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조차 들은 기억이 거의 없었다. 채서가 대학에 입학 후 기숙사에 짐을 풀고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서재를 열었을 때 채서가 마주한 건 아버지의 등이었다. 차갑게 늘어져 매달려 생명이 사라져 버린 아버지의 커다란 등이 채서의 모든 유년의 삶을 사라지게 했다.
온도가 달랐던 단주의 등을 채서는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 마음대로 손을 내밀었다가 가차 없이 벗겨져내리는 그녀의 공포를 마주할 수 없어 다시 어둠으로 그녀 자신을 내동댕이 친 거나 다름없었다. 단주의 주방에는 기역자의 먼지들이 쌓이고 있었다. 회한으로 오열하는 날들만큼이나 채서가 집중할 수 있는 건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검은 먹을 갈다가 손가락이 뜨거워지며 피나 날 때면 이상한 흥분에 눈물이 쏟아졌다. 용서할 수 있을까. 속죄가 될까. 그런데 누가 누구를? 채서 자신을? 아버지를? 아니면 단주를?
그가 마시던 차의 향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오래 저으며 만들어 주었던 하얀 쌀죽의 안개 같은 뜨거운 김도 모두 붙잡아 그녀의 화선지 위에 영원히 박아두고 싶었다. 오믈렛의 지글거리던 소리도 유리 용기를 따라 흘러내리던 딸기 아이스크림의 느릿한 유혹도.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잠들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붓을 들고 있는 그 시간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혼자니까 그렇게 절실히 혼자라서 가능한, 단주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독약 같은 고독의 울타리 안에서 그녀 또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채서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경멸로 시작했던 작업들을 하면 할수록 단주가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잘 살아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채서가 결별을 통지했던 시간이 멀어질수록 그 비어진 공간의 허전함이 커질수록 단주에게도 채서가 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녀의 마지막 전시의 힘이 되었다.
1층의 단주가 모두 비워져도 아직 가득한 그곳의 흔적들이 채서를 살아있게 했다. 여전히 손대지 않은 단주의 기역자 주방에는 그의 숨결이 여전히 채서를 응원하고 있었다.
단주가 없는 거의 일 년이 다 돼가는 시간도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 누구나 다 혼자다. 그리고 그 혼자를 거역하려는 욕망은 타인을 상처 내고 자신의 억압된 두려움에 필요 이상으로 가치를 두게 한다. 욕망과 상처를 봉합하는 일, 채서는 그런 아물림의 의식을 단주를 향해 진심으로 하고 싶었다. 단주의 순수에 고통을 준 벌을 채서 스스로에게 실행하는 시간을 기쁘게 맞기로 한 날이었다.
전시는 성공이었다. 마지막 전시날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채서는 다시는 보지 못할 자신의 그림들을 천천히 하나씩 마음에 넣었다. 마지막 그림이 걸린 기역자의 하얀 벽으로 돌아서면서 채서는 그대로 멈춰 섰다. 차의 향기를 형상화한 안개의 물빛을 세밀하게 그린 작품 앞에 누군가 오래 서있었다. 낯익은 등이 채서를 얼어붙게 했다. 두려움에 돌아서는 채서를 향해 그가 말했다.
"저, 카모마일티 좋아하세요?"
[끝]
▣ 작품의 부분 사진: Summer, Unfolding (펼쳐지는 여름) by 강민혜 (장지에 분채, 인사동 전시,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