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이에게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

by노신화

말을 곱게 하던 여덟 살 라온이가 달라졌다. 동생에게 사납게 말하는 것이 며칠 됐다. 가벼운 주의로 나아질 줄 알았건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어른에게까지 버릇없이 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즉시 나는 녀석의 손을 잡고 단둘이 방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라온이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순순히 따라나섰다. 엄마와 둘만 마주 앉으면 꾸지람 대신 차분한 대화가 오가고, 진한 포옹으로 마무리되는 걸 알아서다.

“라온아, 엄마가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 얼마 전부터 우리 라온이가 동생한테 툭하면 소리치더니, 아까는 이모랑 통화할 때 좋게 대답하지 않고 ‘아까, 말했잖아!’라고 하더라.

요즘 라온이 말투가 문제 있다는 거 알아?”

“응.”

순한 양처럼 답하는 것이 반가웠다. 내가 알던 라온이의 모습이었다.

“라온이도 알다니 다행이다. 엄마가 또 궁금한 게 있어. 우리 집에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잖아. 엄마도, 아빠도, 로운이도 다정하게 말하는 편인데, 라온이는 왜 그러는 거야?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걸 보니까…… 혹시…… 학교에서 누군가가 그러니?”

“응. OO이가 그렇게 말해.”

또 그 아이였다. 심한 개구쟁이라 담임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많이 받는다는 아이. 며칠 전에는 라온이가 녀석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도 했었다. 어떤 거짓말인지 기억나지 않아 다음에 알려주기로 했었다.
초등학생이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친구의 말투에 물들었다니. 주변 영향으로 이런저런 물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다. 하지만 자신의 고운 색만큼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있건 지켜야 한다.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내가 평소에 자주 강조했던 바를 라온이가 잊은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OO이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일 수도 있네. 엄마가 늘 말했었지? 놀이터에서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옆에 있는 동생들이나 친구들이 따라 한다고. 봐봐. 라온이도 따라 하는 거잖아. 이제 안 좋은 걸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곱게 말하도록 하자.”

“응. 엄마, 그런데……. OO이가 나한테 거짓말했던 거 생각났어!”

“그래? 뭔데?”
“자꾸 ‘김라온은 못생겼다.’, ‘김라온은 바보다.’라고 해. 내가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해.”
‘놀린다’고 해야 어울릴 텐데 ‘거짓말 한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뭘까? 라온이로서는 도무지 믿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아주 멋지고, 똑똑한 아이로 알고 있었으니까.

라온이는 OO이의 거짓말(?)을 떠올리며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내가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녀석이 매우 멋지고 지혜로운 아이임을 상기시켜주자 소나기가 그친 하늘처럼 해맑게 빛냈다.
더 들어보니 OO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을 놀렸을 때 볼 수 있는 반응에서 즐거움을 찾았을 것이다.
“라온아, OO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니까 그냥 무시하는 게 어때?”

“난 기분이 나쁜데 어떻게 무시를 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 글자씩 힘주어 말하는 라온이를 보며 아차 싶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종종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상대가 아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대안을 제시해버리는 것 말이다. 누군가의 고약함을 무시하고 가뿐히 튕겨내는 건 내공이 단단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라온이처럼 순수한 동심의 내공은 아직 말랑말랑하다. 때문에 상대의 공격에 움푹 패고 만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 나이 때는 마찬가지였다. 나를 향한 고약한 행동에 당혹스러워할 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답답했다. 지금의 라온이도 그럴 것이다. 그냥 무시하라는 나의 말은 라온이의 정당한 속상함을 인정하지 않는 무바카라임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래. 우리 라온이가 엄청나게 기분 나쁘고 속상했지? 충분히 그럴만해. 아무래도 라온이가 알려줘야겠다. 앞으로 또 그러면 ‘OO야, 그건 장난이 아니라 괴롭힘이야. 그만해.’라고 말하는 게 어때?”

“좋아.”

작은 공감에도 나의 귀염둥이는 금세 분노를 사그라뜨렸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라온이의 문제가 곧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놀림당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화나고 불편하지만, 조만간 OO이의 공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무시하는 때가 오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라온이가 이어서 들려준 얘기에서 심각성을 느꼈다. OO이는 라온이를 매일같이 놀리는 것도 모자라, 도둑으로 몰기까지 했다. 라온이가 물건을 훔쳐 갔다며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다행히 라온이가 평소 모범적이라 억울하지 않게 마무리됐다.

아이가 부당한 일을 겪었음을 전할 때 부모의 역할이 있다. 아이보다 몇 배 더 분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세상 무엇보다 든든하고 강력한 울타리가 있음을 알려주는 행동이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기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나는 콧바람을 거칠게 내뱉으며 카랑카랑하게 말했다.

“뭐! 그랬단 말이야? 그 녀석 진짜 가만두면 안 되겠네! 감히 우리 라온이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한테! 라온아, 아무래도 OO이에게는 아주 아주 강하게 말해야겠다!”

나의 과장된 분노를 보며 라온이는 미소를 머금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엄마,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게 어때?”

“오! 어떻게?”

“‘OO야, 그렇게 행동하는 걸 미래에 네 아들이 될 아이가 지금 다 보고 있어. 그러니까 그만해.’라고.”
이 방법은 내가 애용(?)하던 것이다. 나는 우리 집 두 꼬마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면 부드럽게 말하곤 했다. 미래의 자식들이 지금 다 보면서 ‘어라! 우리 아빠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거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라온이는 하던 걸 서둘러 멈췄다. 그러니 친구에게도 통하리라 여긴 모양이었다.
다정하게 친구의 행동을 바로 잡아주려는 것을 기특하게 여길 법도 한데, 오히려 우려스러웠다. 그동안 내 아이를 지나치게 해맑고, 순수하고, 바른 환경에서만 지내게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중요한 걸 알려줘야만 했다. 이 세상에는 녀석과 다른 결의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 상대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함을.
“와우! 라온아. 너무 좋은 생각이다. 만약에, OO이가 그 얘기를 이해하고 잘못을 멈출 정도로 수준이 높다면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거야. OO이 수준은 어때? 높아?”

“음……. 아니. 안 높아. 그냥 엄마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하는 게 좋겠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1단계로 그건 장난이 아니고 괴롭힘이라는 걸 말하는 거지. 그래도 안 들으면 2단계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OOO!(성을 포함한 이름) 고약한 짓 그만해! 너 지금 못나 보여!’ 한 번 해볼래?”
“OOO, 고약한 짓 그만해~. 너 지금 못나 보여~.”
말투와 표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라온이는 친절한 요정이 동화바카라을 읽어 주는 것처럼 말했다. 경고성 말을 그렇게 하다가는 놀림거리 하나를 더 던져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나는 곧바로 힘 있는 목소리 톤, 억양, 눈빛을 코칭해주었다. 라온이는 민망한 듯 웃으며 재도전했고, 또다시 요정의 말투를 선보였다. 그동안 녀석이 상냥함과 친절함이라는 옷을 입고 친구들을 대했고, 그러면서 편안함을 느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옷도 입을 줄 알아야 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심리학 전문가가 했던 말이 있다. 인간의 가학적인 행동은 피해자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괴롭힘을 단호히 거부하고, 중단시키며,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라온이가 제법 그럴싸하게 말하는 데 성공했다.

“옳지, 잘했어. 혹시 다른 친구들은 OO이가 괴롭히면 어떻게 했었어?”

“하지 말라고 하거나, 선생님에게 말한다고 했어.”

“그래, 대부분 그랬을 거야. 그래서 OO이가 친구들 말 들었어?”

“아니.”

“그렇지? 이제 좀 달라져야 해. 지금 엄마랑 연습한 대로 말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잖아. 아마 라온이가 그렇게 하면 OO이는 좀 놀라서 하던 걸 멈출 거야. 만약 안 멈추면 3단계로 넘어가면 돼. ‘난 더 이상 너랑 얘기 안 할 거야!’라고 말하는 거지.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반 친구들은 그걸 다 지켜보면서 ‘어라? 저런 방법도 있네?’ 하면서 라온이처럼 해볼 거야. 라온이가 선구자가 되는 거지.”

나는 내 아이들에게 선구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선하거나, 올바른 일이라면 부끄러워하는 대신 앞장서서 하는 것이 멋지다면서.

“어때? 엄마가 말한 방법이 괜찮을 거 같아?”

“응!”
“좋아. 앞으로는 그렇게 해보자. 라온아, 어떤 어른은 아이에게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고 하거든. 엄마는 아니야. 라온이를 괴롭히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하고는 안 그래도 돼. 그리고, 그런 짓을 당장 그만두게 해야 해. 누구도 라온이에게 그러면 안 돼. 절대로! 왠지 알아?”

“응. 나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니까.”

작고 사랑스러운 꽃 한 송이가 피었다. 라온이가 작은 두 손으로는 만든 꽃받침 위에 얼굴을 올린 채 장난스레 미소 지으며 피워낸 꽃이다.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맞아. 우리 라온이가 엄마 배 속에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얼마나 정성껏 키웠는데! 늘 라온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라면서 키웠단 말이야.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한 보물에게 감히 그런 행동을? 절대 안 되지!”
그날 라온이는 자신을 지켜내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면서 서툴고 어색해했다. 나는 그 모습이 염려스러웠지만 이내 걱정을 덜었다. 라온이가 기초 중의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이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제법 확고히 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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