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바람의 짓이다

- 몰입의 시간

by서향

글쓰기 모임의 열다섯 번째 글감- ‘몰입’



Ⅰ

몰입(flow)이란 주위의 모든 잡념을 차단하고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일을 말한다.

하나를 얻고 전부를 잊는 것?

아니

종국에는 그 하나까지 잊고, 나 자신도 잊는 것!

어쩌면 몰입은 ‘멍-’하고도 통하는 면이 있다.



Ⅱ

우리를 몰입의 상태로 이끄는 건

모두 바람의 짓이다.

눈앞에서 반원을 그리며

최면에 들게 하는 추(錘)처럼

바람은 우리를 몰입의 순간에 빠지게 한다.



Ⅲ

불꽃의 붉은 혓바닥을 일렁이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그 붉은 유혹을 당해낼 자는 없다.

결국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불꽃의 춤사위에 홀려

시간을 잊는다.

우리는 그것을 불멍이라 부른다.




Ⅳ

물결의 규칙적인 출렁임을 보라.

저 역시 바람의 짓이다.

강물은 고요히 침묵하고 싶었지만

바람은 그를 요동치게 하여

우리를 그 출렁임에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나를 잊는다.

물멍의 세계다.



Ⅴ

구름에 마음을 뺏겨본 적이 있는가?

하얀 솜뭉치가 모였다 흩어진다.

어디로 가는 걸까 괜한 것이 궁금해진다.

형체 없는 물방울의 결정(結晶)을

모이게, 흩어지게, 어딘가로 이끄는 것도

다 바람의 짓이다.

그렇게 고개를 치켜들고 발걸음을 멈추고

우린 방향을 잊는다.

그 경지를 구름멍이라 명명하자.





Ⅵ

시각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후각이다.

식욕을 돋우는 것 역시, 미각보다 후각이다.

커피도, 와인도 그 정체를 먼저 알아채는 것은

후각이다.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향기를

우리에게 이끄는 것 역시,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바람의 짓이다.

우리는 심신의 긴장을 잃는다.

향멍이라 부르는 것은 어떠할지



Ⅶ

모두 고마운 바람의 짓이다.